<일본> 日 독서율은 사상 최고라는데… 서점들 왜 줄줄이 문닫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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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일본의 언론단체들이 몰려 있는 니혼프레스센터. 이곳 1층의 대형서점 체인 마루젠이 얼마 전 문을 닫았다. 도쿄(東京)역 등 목 좋은 곳에 전력을 집중하기 위해서라지만 비수익 점포 정리인 셈이다. 비슷한 시기에 긴자(銀座)의 유서 깊은 양서 전문점 이에나서점이 경영 악화로 폐점했고 지난해 연말엔 중견 서적유통업체인 스즈키서점이 도산했다.

동네의 이름없는 군소책방은 더 어렵다. 특히 학교 부근의 책방들은 학생수가 줄어든 만큼 매상이 줄었다. 또 편의점들이 잡지·만화·단행본을 판매하면서 손님도 많이 빼앗겼다.

일본서점조합에 따르면 전국 2만여개의 책방 중 최근 3~4년간 매년 1천곳이 문을 닫았다. 신간 서적·잡지의 판매도 지난해 2조3천2백억엔으로 5년 연속 감소했다. 한창이던 1996년(2조6천6백억엔)에 비해 약 13% 줄었다.서점들은 유례없는 출판불황이라고 온통 울상이다.

책벌레로 유명한 일본인들도 이젠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일본인들의 독서시간은 계속 늘고 있다. 불황이라 다른 여가를 즐길 여유가 없어지자 책을 더 읽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마이니치(每日)신문 조사에 따르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독서율은 지난해 말 87%로 사상 최고였다.

독서시간도 하루 평균 31분으로 49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길다. 여기에 잡지를 포함하면 59분으로 더 늘어난다. 하루 1시간은 거르지 않고 활자와 접하고 있다는 얘기다. 신문 읽는 시간 42분은 별도다.

왕성한 독서열에 썰렁한 서점가. 이 모순을 설명해주는 해답은 헌책방과 도서관이다.

크고 작은 고서점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도쿄 간다(神田)엔 평일에도 수만명이 찾아온다. 헌책 바겐세일이라도 하면 수십만명이 몰려 거리 전체가 복작거린다. 최근엔 서점가 공동의 홈페이지(http://www.book-kanda.or.jp)도 열어 고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책더미 속에서 희귀본을 뒤지는 노인도 있지만 신문에 난 책광고를 오려 들고 찾아오는 젊은이들도 많다.

헌책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북오프' 등 고서점 벤처기업도 등장했다.이들은 너덜너덜한 헌책을 새책처럼 반들반들하게 손질하는 기계를 개발하는가 하면 어두침침한 분위기도 싹 바꿔 화려한 조명에 경쾌한 음악을 틀어 놓고 있다. 여성들도 마치 햄버거집 들어가듯 부담없이 찾는다. 가격은 최근 출간된 책이 정가의 절반이고 좀 오래되면 권당 1백엔이다. 신간서적 한권 값으로 너덧권은 거뜬히 살 수 있다.

도서관의 이용률도 크게 높아졌다. 공공 도서관의 책대출 건수는 연간 6억건에 육박한다. 베스트셀러인 『해리 포터』시리즈는 1년 후까지 대출이 예약돼 있다.

그러다 보니 출판사·서점들은 불만이 대단하다. 일부에서는 도서관들이 대출을 유료화해 줄어든 판매수입을 보조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인들은 가벼워진 호주머니 사정에 맞춰 값싸게 책을 읽으려 하고 있다. 이런 '불황형 독서'가 출판불황의 배경인 셈이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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