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거진 가요계 표절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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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4집 앨범 ‘에이치 로직(h.logic)‘의 일부 곡의 표절 사실을 시인한 가수 이효리. 그는 “당분간 후속곡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왼쪽). [탑걸 제공]

한국 가요계에 ‘표절 유령’이 또 다시 출현했다. 가수 이효리가 4집 수록곡 중 일부에 대해 표절 사실을 시인하면서다. 표절 의혹이 불거진 노래는 모두 여섯 곡이다. 7인 작곡가 집단 ‘바누스 바큠’이 만든 ‘하우 디드 위 겟’(How Did We Get), ‘브링 잇 백’(Bring It Back), ‘필 더 세임’(Feel The Same), ‘아임 백’(I’m Back), ‘메모리’(Memory), ‘그네’ 등이다.

이효리는 “외국곡이어서 원작자를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며 “여섯 곡 가운데 두 곡이 다른 원작자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원작자에 의해 표절로 확인된 곡은 ‘브링 잇 백’과 ‘하우 디드 위 겟’이다. ‘하우 디드 위 겟’은 미국 R&B 가수 제이슨 데룰로(Jason Derulo)의 ‘하우 디드 위’(How Did We)를, ‘브링 잇 백’은 캐나다 여성그룹 쿠키 커처(Cookie Couture)의 ‘보이, 브링 잇 백’(Boy, Bring it Back)을 각각 표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효리 소속사인 엠넷미디어 측은 “나머지 네 곡에 대해서도 원작자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해외파 작곡가에 대한 검증이 미흡”=표절 시비에 오른 여섯 곡은 작곡가 바누스(본명 이재영)가 주도적으로 썼다. 그는 연세대 법대를 다녔으며,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길드홀 스쿨 오브 뮤직 앤드 드라마(Guildhall school of music and drama)’에서 작곡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출신 팝그룹 블루와 여성 4인조 크로스 오버 그룹 본드의 앨범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린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에서 가수 이현의 ‘자존심’이란 발라드곡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주로 영국에서 활동해오다 처음으로 이효리의 음반에 참여했다.

그러나 앨범 발매 직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각종 동영상이 떠돌았다. 당시 소속사 측은 “내가 쓴 데모곡이 유출돼 다른 가수들이 부른 것”이란 바누스의 해명을 믿었다. 이후 바누스는 영국 스튜디오 녹음 일지 등을 내밀며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증빙서류 또한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엠넷미디어 관계자는 “영국에서 활동 중인 신예 작곡가에 대한 검증이 미흡했다”며 “저작권 등록이 안 된 곡들을 위주로 교묘하게 표절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바누스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기로 방침을 정한 엠넷미디어 측은 바누스의 도주를 우려해 여권과 신분증 등을 확보했다. 바누스는 주변에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 채 현재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다.

올 2월 히트곡 ‘외톨이야’가 인디밴드 와이낫의 ‘파랑새’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아이돌 밴드 씨엔블루. [FNC 뮤직 제공]

◆“논란만 있고 결론은 없는 표절 의혹”=가요계의 표절 시비는 해묵은 논란이다. 올 초에도 아이돌 밴드 씨엔블루의 히트곡 ‘외톨이야’가 인디밴드 와이낫의 ‘파랑새’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법적 다툼으로 이어졌다. ‘파랑새’를 작곡한 와이낫의 전상규씨는 “표절 시비는 늘 논란만 있고 결론은 없는 사건으로 흐지부지 된다”며 “표절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법정에서 끝까지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표절 시비가 법원 판결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소송을 제기한 측에서 감정 비용(평균 500만~600만원)을 부담해야 하는 데다, 승소 하더라도 실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까지 법정에서 표절 여부가 가려진 사건은 2006년 MC몽의 ‘너에게 쓰는 편지’가 유일하다. 더더의 ‘잇츠 유’를 표절했다며 원고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대중음악평론가 송기철씨는 “표절은 남의 곡을 훔치는 범죄이므로 처벌 수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표절 의혹이 제기된 곡을 방송에서 일단 보류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가요계의 ‘레퍼런스’ 관행도 문제로 제기된다. 레퍼런스란 앨범 제작자가 작곡가에게 “이 곡의 분위기와 비슷하게 해달라”며 건네는 일종의 참고곡이다.

한 유명 싱어 송 라이터는 “레퍼런스란 목표를 설정해 놓고 작곡을 하다 보면 표절의 선을 자신도 모르게 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몇 주 내로 히트 여부가 판가름 나는 음악산업의 구조상 표절의 유혹은 누구나 받을 수 있다”면서 “작곡가 스스로 양심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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