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눈 터지는 계가 바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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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준결승 2국>
○·추쥔 8단 ●·이창호 9단

제 11 보

제11보(125~139)=‘승부사’ 하면 격렬하고 모험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승부사는 선천적으로 조심성이 많은 사람들이다. 일례로 서봉수 9단은 스스로 “겁이 많다”고 밝힌다. 젊어서 ‘야생의 표범’으로 불렸고 ‘야전사령관’이란 별명을 얻었던 서 9단이 겁이 많다는 게 이해가 안 되지만 실제 서 9단의 조심성은 무서울 정도다. 물론 그 서 9단도 이창호 9단의 조심성에 비하면 한 수 아래다. 이 9단의 조심성은 천부적이며 여기에 절제력이 겹쳐 더욱 분명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한데 이 9단은 전보 흑▲로 끼웠고 백△로 잡혔다. 누구의 착각인가 싶었는데 ‘흑의 실수’라는 결론이 내려지고 있다. 전보에서 밝힌 대로 A의 절단은 불가하다. 이 9단은 결국 125, 127로 물러섰고 상당한 손해를 보고 말았다. 그토록 조심성 많은 이창호이지만 인간인지라 실수가 나오는 것이다. 그게 바둑이라는 게임이다. 미세하게 우세했던 바둑은 이제 눈 터지는 바둑이 되고 말았다. 반상 최대의 128에 달려가는 추쥔 8단의 손끝이 갑자기 묵직해졌다.

131과 132를 마지막으로 판 위엔 큰 끝내기가 모두 사라졌다. 137로 젖혀 이은 상황에서 계가를 해 보면 흑집은 78집. 백집은 72집. 백 선수라 백이 앞선 듯 보이지만 그건 아니다. 상변 대마가 미생이어서 일단 살아야 한다. 그렇더라도 진짜 미세하다. 대국장인 상하이 한국문화원이 긴장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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