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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기자의 의료현장 (29) 광명성애병원(수지접합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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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김진수 소장(오른쪽)이 20배 확대 현미경으로 미세수술을 하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 11시20분, 김○철(48·서울 양천구)씨는 공장에서 기계를 조립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철판이 내려앉으면서 그의 손가락을 덮쳤다.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 한 마디가 손톱까지 힘없이 잘려나갔다. 그는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절단된 손가락을 들고 병원을 향해 달렸다. 그가 광명성애병원 수부재건센터 김진수 소장(성형외과)을 만난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엑스레이를 찍으니 절단된 뼈마디가 보인다. 잘린 손가락을 붙이기 위해 붕대를 푸니 손끝에서 붉고 굵은 피가 뚝뚝 떨어진다.

하얀 거즈를 흠뻑 적시고도 모자라 금세 다시 차오른다. 피는 잘려 나간 손가락 마디에서 분출되고 있다. 식염수로 상처 부위를 씻어내자 피를 뿜는 동맥이 보인다. 수술을 위해 팔을 부분마취하고 환자를 잠시 재웠다.

김 소장은 핏기를 잃은 잘린 손가락을 집어 들었다. ‘드르륵.’ 수술용 드릴로 절단지와 손가락에 철심(K-wire)을 관통시켜 뼈와 뼈를 연결한다. 뼈가 붙는 4~6주 후면 철심을 제거할 수 있다. 뼈 다음은 끊어진 동맥과 신경, 그리고 정맥을 연결할 차례. 피부 표면으로부터 깊이 위치한 순서대로 작업이 진행된다.

김 소장이 집게(Forceps)와 지침기(Needle holder)를 쥐고 잘린 동맥을 꿰매기 시작한다. 손끝 동맥의 지름은 고작 0.5㎜ 안팎. 손가락 지문의 두께와 비슷하다. 그는 혈관벽에 바늘과 실을 통과시킨다. 입김에 날아갈 것 같은 가느다란 실로 무려 여섯 땀을 뜬다.

“이 안에 피가 지나는 게 보이죠?” 끊긴 동맥이 이어지자 죽은 것 같던 혈관이 검붉게 변하며 살아있음을 알린다. 이제 손의 감각이 살아날 수 있도록 신경을 봉합한다.

뼈→동맥→신경→정맥 순서로 연결

끊어진 동맥을 실로 꿰맸다. 집게의 끝부분 두께는 0.1㎜.

김진수 소장은 “손가락당 두 다발의 신경이 지나는데, 끝으로 갈수록 나뭇가지 치듯 수십 수백 갈래로 갈라진다”고 말했다. 그중 굵은 신경 두 개를 골라 이었다.

이제 정맥 차례. 지금부터가 어렵다. 김 소장은 “동맥은 있는 위치가 일정하지만, 정맥은 사람마다 개수와 굵기, 위치가 다르다”며 “지리멸렬한 지뢰 찾기 같다”고 했다. 울룩불룩한 지방조직에서 실지렁이 같은 가닥(정맥)을 하나 꺼내 들더니 이내 내려놓는다. 굵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정맥의 판막 자른 뒤 절단부위 정맥과 연결

손가락이 절단된 환자의 손.

동맥이 상수도라면 정맥은 하수도. 보통 손가락 하나에 두 개의 동맥이 지나지만 이를 모두 이을 수는 없다. 정맥과 균형을 맞춰, 혈액순환이 원활히 되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날은 동맥 한 개에 정맥 두 개, 신경 두 개를 잇기로 했다. 다시 동맥에 어울리는 더 튼튼한 정맥을 찾기 위해 그는 좁은 공간을 헤집기 시작한다. 드디어 쓸 만한 정맥을 찾았다. 혈관에 피가 통통하게 고였는데도 절단된 부분으로 피가 흘러나오지 않는다. 정맥 속의 판막 때문이다.

그는 “정맥에 있는 판막은 한번 올라온 피가 아래로 쏟아지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 판막을 꺼내 자른 뒤 절단지 쪽 정맥과 연결했다. 마무리로 피부를 봉합하는데 환자 김씨가 잠에서 깨 통증을 느끼는지 움직인다. “조금만 참으세요. 거의 다 됐어요.” 잠시 후 절단지에 핏기가 돌면서 연핑크 살색을 되찾는다. 환자는 앞으로 3주간 입원해 경과를 지켜보게 된다.

글·사진=이주연 기자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했다면=절단지를 어떻게 보관해 오느냐에 수술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 먼저 절단지를 식염수나 깨끗한 물로 씻는다. 식염수에 적셨다가 꼭 짠 거즈로 절단지를 싸고, 비닐이나 용기에 넣어 봉한다. 그 주변을 얼음물로 채운다. 절단지를 얼음 물이나 소주 등 액체에 담가오면 퉁퉁 불어 대부분 실패한다. 신문지 등 건조한 상태로 오는 것도 조직을 상하게 한다. 특별한 조치가 어렵다면 차라리 적신 거즈에 절단지를 싸서 병원으로 가져오는 편이 낫다. 보관만 잘하면 최대 3일 지난 손가락도 살릴 수 있다.


수지접합 수술은
“3D 업종” 젊은 의사들 외면 … 전문병원 사라질까 우려

손가락을 이어 붙이는 미세수술 전문의는 가는 손가락 혈관과 신경을 들여다보기 위해 20배 확대 현미경을 쓴다. 시력이 나빠지고, 어깨와 허리가 쑤신다. 밤에도 수시로 응급환자가 오기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기 어렵다.

광명성애병원 수부재건센터에서 21년째 수지접합만 하고 있는 김진수 소장(사진)은 거의 매일 당직을 선다.

김 소장은 “새벽 2시에 온 환자를 ‘피곤하니 내일 하자’ 고 했다가 결과가 안 좋으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며 “차라리 몸이 힘든 게 낫다”고 했다.

일이 힘들다 보니 수지접합을 배우겠다고 나서는 젊은 의사들이 포기하고 돌아서기 일쑤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어려운 수술임에도 노력에 대한 대가를 인정받기 어렵다. 김 소장과 같은 성형외과 전문의가 한두 시간 성형수술을 하면 수백만원을 벌 수 있다. 그러나 손가락 하나를 붙이고 받는 비용은 약 30~70 만원 수준. 그나마 올초부터 수가가 2.8%나 인하됐다.

그는 “미국에선 수지접합술 비용이 한국의 10배 수준으로 비싸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환자는 손가락을 포기할 정도” 라고 말했다.

199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산재환자가 많아 손가락 절단 사고가 허다했다. 지금은 산재환자는 크게 줄었다. 대신 문틈에 손을 찧거나 연필을 깎다 베이는 등 생활 속의 수지손상 환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김 소장이 바라는 게 하나 있다. 접합수술을 한 뒤 환자들에게 복합적인 물리치료가 필요한데 건강보험규정에 막혀 할 수 없다는 것.

그는 “수지접합을 하고 난 뒤 재활을 위해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재수술 여부를 결정한다”며 “일부과에만 한정된 물리치료 급여를 성형외과에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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