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둥이의 남모를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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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실린 등장 이전 성병에 대한 공포는 가족 멸망이 수반된 개체의 죽음이라는 처절한 현실 그 자체였다. 매독이 휩쓸고 간 15세기 무렵 유럽은 하느님의 구원이 아니면 달리 해결책이 없던 절망의 시대였다.

곽대희의 성칼럼

그 고집스럽던 공포로부터 해방된 것은 1945년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하고 곧이어 그것이 매독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인정되면서부터라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류에 대한 재앙은 파도처럼 하나의 큰 파도가 지나가면 다시 또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듯 매독보다 100배나 무서운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이라는 신종 질병이 쓰나미가 되어 우리 앞에 밀어닥쳤다.

그런데 성병은 인구가 증가하고 교통의 발달로 교차하는 접촉면이 빈번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퍼져 나간 전염병 중 하나다. 바꾸어 말하면 문화의 산물이란 뜻이다.

하여간 이런 방식으로 인류가 서로 교차하면서 자연히 퍼져 나간 전염병 중의 원조는 임질이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이미 5000년 전부터 고대 중국에서는 임질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고대 인도와 아라비아, 로마, 그리고 그리스에서도 임질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고대 의학의 창시자인 히포크라테스나 갈렌의 언급 속에 임질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 당시 임질이 얼마나 성행했던 전염병인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879년 나이세르가 처음으로 임균을 염색해 현미경으로 관찰함으로써 임질의 본체가 밝혀졌지만 불행하게도 당시의 의료수준으로는 임질을 치유할 수 있는 적절한 방도가 없었다.

아무런 저항수단이 없는 인체조직에서 임균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조직을 파괴한 후 마치 불이 집을 태울 만큼 태워버린 다음에 저절로 진화되듯 임질이란 병은 불임이란 상처를 안겨준 채 자연 치유되는 코스를 밟았다.

당시의 임질 치료방법이 설명하는 에피소드가 많은데,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는 창녀로부터 얻은 임질을 수은요법으로 고쳤다가 곧 재감염되는 쓰라린 경험을 자서전 속에 기록해 놓았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적 지주였던 장 자크 루소도 그의 자서전 속에 예쁜 창녀들이 사랑의 즐거움을 나누자고 손짓해 부르는데도 임질 공포 때문에 접근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글이 남겨져 있다.

1812년 나이세르 박사의 임균 발견과 바세르만 교수의 혈청학적 검사법 개발로 임질과 매독이 서로 다른 질병이라는 사실이 규명되었고 이것은 성병 치료법 개발의 기폭제가 됐다.

임질은 감염되면 48시간 후 소변이 고름 분비로 인해 혼탁해지고 싯누런 고름이 흘러나오며 다소간의 통증이 일어난다. 여성에게는 방광염, 복막염, 자궁내막염 등의 부인병이 발생하고 난자의 통로인 난관이 불완전 폐쇄되면 자궁외 임신, 완전히 막혀버리면 불임을 일으킨다.

1945년 4월 12일 나폴리 공국을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의 샤를르 8세가 적대관계에 있던 로마제국과 스페인 연합군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찬란한 승리를 거뒀음에도 치욕적 퇴각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프랑스 군인들이 나폴리 창녀로부터 얻은 매독 감염으로 치명적 전력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스페인과 프랑스군이 번갈아 나폴리를 점령하면서 그들의 품에 안겼던 이탈리아 여성들 역시 이 성병이 무서운 기세로 번져 나갔다.

프랑스인들은 이 몹쓸 병을 ‘나폴리 병’ 또는 ‘스페인 병’이라고 불렀으며, 이탈리아 측에서는 프랑스 병사들이 가져온 병이라는 뜻에서 ‘프랑스 병’이라고 했다.

조선조 말, 그리고 개화기 대원군의 쇄국정책도 실은 당시 유구창(琉球瘡)이라는 매독 상륙 방지가 그 목적 중 하나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을 실행할 만큼 역학(疫學) 지식이 있었는지에 관해서는 확실히 자신할 수 없다.

자고로 성병에 감염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아내 이외의 여성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뿐이다.

곽대희비뇨기과 원장

<이코노미스트 9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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