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우 前총리 특별 인터뷰 : "미래의 한국 살릴 代案 5년내 선점 못하면 失機"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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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남덕우(南悳祐)전총리(현 산학협동재단 이사장)는 수년 전부터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를 구상해왔다. 지난해 9월 동북아 국제회의를 개최한 후 토의 결과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 보고하기도 했다. 南 전총리의 동북아 구상을 들었다.

영종도부터 집중육성

-정부가 4일 발표한 동북아 청사진을 평가해달라.

"대체로 큰 틀은 잘 잡힌 것 같다. 세부적인 사항은 계속 보완해 나가야할 것이다. 다만 우선순위를 가려 일차적으로 영종도 지역을 집중적으로 개발하라고 권하고 싶다. 하여튼 한국 경제의 앞날을 열어가는 중요한 정책 방향을 제시한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왜 한국이 동북아 물류·비즈니스 중심지가 돼야하나.

"중국의 부상으로 세계 경제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중국의 임금 수준은 우리의 5분의1도 안되고 토지가 국유여서 토지비용도 매우 낮다. 그리고 '개발 독재'의 정책 추진력도 대단하다. 이런 사정 때문에 많은 나라가 중국의 제조업과 경쟁할 수 없게 됐고 중국은 세계의 생산기지가 돼가고 있다. 앞으로 10~20년 이내에 중국은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 될 전망이다.

그러면 우리의 살길은 무엇인가.물론 우리는 광대한 중국시장의 틈새를 찾고, 공업제품을 고급화·차별화하고 첨단기술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또 하나의 살길이 있다. 그 것은 한국을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의 무역과 물류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다행히 한반도는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해 전세계 및 지역 내 모든 공항·항만과 효율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효율적인 물류 및 비즈니스 중심지를 만들어 놓으면 가장 유리한 동북아 비즈니스 거점을 찾는 다국적 기업들이 모여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역·통관·통신·금융·위락 등 서비스업이 확산되고, 모든 업무의 전산화로 정보와 관리기술이 동원되고, 고가품 항공 운송 편의를 위해 첨단기술 제품의 생산 기지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고용과 소득이 창출되고 경제 성장의 견인차가 될 수 있다. 요컨대 한국이 세계화·디지털화·소프트화의 세계적 추세에 적응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동북아 중심지가 되기 위해 해결할 과제가 많다. 우리 현실을 감안할 때 과연 풀어갈 수 있을까.

"우리의 문제점은 ①취약한 물류 기반시설과 높은 물류비용 ②행정규제 및 절차의 복잡성과 불투명성 ③높은 임금과 강성 노조 ④고(高) 지가·고 임대료 ⑤입시 교육에 눌린 전문교육의 미비 ⑥외국인의 생활환경 불량 ⑦과다한 기업 과세 ⑧외국투자 기업에 대한 비우호성 ⑨국민의식과 행동의 후진성 등이다.

동북아 개발銀 만들자

이런 약점을 극복하자면 정부·국회·언론 사이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고 또 협조만 있으면 극복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관련 정책을 거국적·초당적으로 추진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국회에 여야가 함께 특별위원회를 구성했으면 한다."

-물류 및 비즈니스 중심지를 개발하자면 많은 돈이 들텐데 어떻게 조달해야 하나.

"공항·항만 확장, 도로 건설 등 사회간접시설 구축에 막대한 재정투자가 필요한데 이 것들은 어차피 장기적으로 해야할 사업들이다. 물류단지 자체의 개발은 국내외 민자 유치로 가능할 것이다. 지정학적 이점이 명백한 만큼 우리가 매력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면 투자 유치는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을 추진해야 한다."

-동북아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보나.

"우선 경제자유도시 혹은 경제특구의 지정, 특별행정기구의 설립, 외국어 교육의 강화, 교육 여건의 국제화, 물류 전문가와 기업의 육성, 외국인 출입국 제도 개선,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세제 인센티브의 확대, 외화규제의 완화, 회계법률 제도의 국제화, 외국인 주거환경 개선 등이 필수 조건이다."

-인천공항 주변을 집중 개발하다 보면 자연히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화할 우려가 있는데.

국민생활도 향상 시킬것

"지금까지도 수도권 인구 집중은 피할 수 없었다. 영종도 개발이 타 지역으로 파급되면 인구 집중이 완화되는 측면도 있다. 서울 인구가 줄어가고 있다는 최근의 신문 보도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광양만·군산·평택 등의 서해안이 개발되면 인구가 분산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물류·비즈니스 중심지 개발이 국민경제 발전에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동북아 물류 중심지의 건설은 한 산업, 한 지역의 문제같이 보이지만 실은 그 것이 요구하는 일련의 개혁조치는 이 나라의 경제운영 전반에 혁신적 변화를 가져오고 국민 생활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이 제안은 정치권의 강력한 리더십과 국민들의 국가생존 전략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5년 내에 선점 체제를 갖추지 못하면 실기(失機)할 우려가 있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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