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매물도 이젠 안 팔려 아파트 시세 의미 없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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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호 01면

“집값이 얼마나 떨어졌느냐고요? 거래가 전혀 없는데 시세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얼마 전까진 급매물이라도 소화됐지만 이제는 그나마 찾는 사람이 없어 경매로 넘겨야 할 판입니다.”

집값 디플레 오나 수도권 중개업소 207곳 긴급 설문

경기도 분당신도시에서 18년째 영업 중이라는 공인중개사 노경호(47)씨는 “요즘처럼 어려운 시절은 처음 겪는다”고 말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분당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판교의 경우 거래는 없어도 관심 갖는 사람이라도 있는데 분당신도시는 그마저 없다”며 “다행히 학군이 받쳐준 덕분에 공황 수준의 폭락은 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 지회장은 “이대로 주택시장이 주저앉는다면 금융권에도 충격이 미치고 나라 전체가 힘들지 않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집값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중앙SUNDAY는 최근 중앙일보 여론조사팀ㆍ조인스랜드와 함께 수도권 부동산 중개업소 207곳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열 명 중 약 여섯 명꼴로 ‘올 들어 5% 이상 집값이 떨어졌다(58.9%)’고 답했다. 정부가 공식 통계로 사용하는 국민은행 조사에선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5개월 동안 수도권의 전체적인 집값은 0.1%, 아파트값은 0.6% 떨어지는 데 그쳤다. 중개업자들이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집값 하락폭과 통계 사이의 괴리가 엄청나게 벌어져 있다는 얘기다. 집값 하락의 원인에 대해선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저가 분양(40.6%)’을 꼽은 사람이 열 명 중 네 명꼴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33.3%)’였다.

중개업자의 절반 이상(53.4%)은 당분간 집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집값 변동이 없을 것’이란 응답도 열 명 중 네 명꼴(43.2%)을 웃돌았다. 주택시장이 회복하는 시점에 대해선 올해 하반기(39.6%)나 내년 상반기(39.1%)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시장이 회복한 뒤 유망한 투자지역은 서울 강남권(43.5%)을 가장 많이 꼽았다.

과거 집값에 거품이 끼었다며 ‘버블세븐’이라고 불렀던 지역 중에는 분당신도시가 특히 심했다. 버블세븐은 서울 강남ㆍ서초ㆍ송파구와 양천구 목동, 경기도 분당ㆍ평촌신도시와 용인을 말한다. 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중순까지 성남시 분당구(분당+판교)의 아파트값은 3% 떨어졌다. 통계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분당의 집값 하락폭은 버블세븐 중 가장 깊었다. 1989년 4월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 호 건설’ 사업으로 시작한 분당신도시는 올해로 개발 21년을 맞았다. 한때 ‘천당 아래 분당’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으나 최근엔 최고점 대비 30~40%나 떨어진 급매물이 나올 정도로 침체했다는 것이 현장 중개업자들의 말이다.

정부와 여당도 깊은 검토에 들어갔다. 현재 ‘부동산 시장 활성화 방안’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민간 건설업계가 기대하는 ‘선물 보따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17일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주택가격의 안정기조는 지속돼야 한다”며 “투기 목적으로 주택을 사던 시대는 지났다. 선의의 실수요자들을 살필 수 있도록 주거의 안정 측면에서 정책을 검토해 달라”고 당부했다. 18일에는 고흥길(성남 분당갑 국회의원) 한나라당 정책위의장도 나섰다. 그는 이날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활성화는 안 되고 부동산 안정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어제 (대통령 주재) 회의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보금자리주택의 분양가는 더 낮아질 전망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 고위 관계자는 “내년에 실시할 보금자리주택의 본청약에선 분양가를 올해 사전예약 때 제시한 가격보다 내리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전예약 입주자 공고문의 ‘추정 분양가’는 상한선을 정한 것이며 그보다 가격을 올리지는 못해도 내리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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