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保―革대결'로 승부건다 : 이회창 "좌파적 정권" 與공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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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전 총재가 대선을 보혁(保革)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3일 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 선언에서 민주당 노무현(盧武鉉)고문을 겨냥해 "좌파적 정권 연장"이라고 공격한 것은 이런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盧고문이 진보 성향의 젊은층에서 지지세를 넓히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영남표를 결집시켜 승부를 걸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李전총재는 자신을 개혁적 보수의 주도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반드시 지켜야 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인권 등 핵심 가치에 대해선 양보없이 지켜나갈 것"이라면서 "굳건하게 보수의 기조에서 개방적·개혁적이면서 따뜻한 정책을 펴나간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盧고문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자신을 '국기(國基)를 지키는' 수호자로 이미지를 형성하려는 것이다.

이날 아침 고려대 정경대 교우회 초청 강연에서는 "볼셰비키 혁명과 나치도 당시 국민과 대중의 바람을 등에 업고 출현했지만 방향을 잘못 잡아 인류에 고통과 불행을 줬다"며 盧고문을 간접적으로 공격했다. 대대적 '색깔 공세'가 예견되는 대목이다. 여기에는 당내 경선 출마 의사를 밝힌 최병렬(崔秉烈)의원의 '보수 이미지' 선점을 막으려는 계산도 작용했다고 한다.

그의 측근은 "정치판 전체의 보수 세력을 한 곳에 규합하는 '보수연합'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李총재 측 전략팀 내부에선 "출마 선언에 '보혁 구도' 의사를 담아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자민련 총재 등에게 '함께 하자'는 메시지를 보내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李전총재의 연설문을 도맡아 작성해온 유승민(劉承旼)여의도연구소장이 초안을 잡았다. 그러나 평소 연설문에 비해 강한 표현이 가득했다."개혁으로 위장한 독선과 오만""무능하고 부패한 집권 세력" 등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도 거친 표현을 사용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급진 세력은 누구를 지칭하나.

"거명할 필요없이 많은 국민이 걱정한다. 나라의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데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급진적으로 나라의 틀을 깰 우려가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현 정권이 좌파 정권이라는 근거는.

"'좌파적'이라고 했다. 이 정권이 잘한 일도 있다. 그러나 때때로 안정을 바라는 국민에게 맞지 않는 좌파적 정책을 하고 있다."

-최병렬 의원의 출마를 만류했다는데.

"그랬다. 崔의원이 우리 당을 이끌어 줬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본인이 대선 후보 경선에 나오는 데 뜻이 있었고, 그렇다면 만류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후보 교체론이 나온다.

"후보 각자가 자신을 내놓고 검증과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으면 지금까지의 지지도나 여론과 관계없이 후보가 되는 것이고, 이후 당과 일체가 돼 정권 교체를 위해 뛸 것이다. 지지 여론이 흔들린다고 후보 교체를 얘기하면 1997년 대선 때 여론 변화가 있다고 뛰쳐나가 경선 결과에 불복해 다른 길을 간 것과 다를 바 없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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