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명 자르고 창업전도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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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제 손으로 뽑은 부평공장 근로자를 1천7백여명 잘라야 했죠. 이제는 이들의 재취업을 위해 일하니 인생이 정말 드라마 같습니다."

구조조정 등으로 퇴직한 대우차 4천여명의 재취업을 도와주는 '대우차 희망센터'의 김경운(39·사진)팀장은 2년 전만 해도 부평공장의 인사과장으로 일했다. 지금은 퇴직자들의 창업전도사로 불린다.

희망센터는 2000년 11월 대우차가 부도나고 구조조정에 나선 뒤 퇴직자들의 재취업과 창업을 위해 다음해 2월 인천시·노동부·대우차가 공동으로 설립했다. 돈은 직접 못대주지만 금융 안내와 창업 컨설팅을 해준다. 희망센터는 지금 부평공장의 사무실 한쪽에서 대우차 직원 13명이 꾸려가고 있다.

그동안 퇴직등록자 4천5백58명 중 1천9백50여명(취업 1천4백52명·창업 4백74명)이 일자리를 마련했다. 金팀장은 가슴 아픈 사연이 많다.

"지난해 여름 늦은 밤에 50줄에 든 생산직 근로자가 찾아왔어요. 예전엔 한푼이라도 더 받겠다며 투쟁에 앞장섰는데 밖에 나와 보니 부근 공장보다 임금이 30% 이상 많았다며 후회하면서 눈물 짓더군요. 재취업을 위해 다른 공장을 찾아갔더니 사장이 노사분규가 많았던 회사 출신이라며 문전박대했다고 하더군요."

보람도 많았다.

"퇴직자 대상 창업 교육인 제과·제빵 과정을 마친 한 퇴직사우 부부가 '눈물로 만든 빵'이라며 교육 후 자신들이 창업한 제과점에서 처음 구운 빵을 가져온 적이 있었어요."

퇴직 사우들의 가장 큰 창업 애로점은 바로 경험 부족이다. 월급쟁이 시절 한번도 해보지 않은 점포 구입부터 등기·집기 구입 등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라는 것이다.

희망센터가 알려지자 외환은행·삼성전기·삼성생명 등이 비슷한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GM 인수단에서도 복리후생 차원에서 희망센터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복리후생 차원에서 이같은 창업지원센터가 회사 내 조직으로 일반화해 있다더군요."

희망센터는 2일 지난 1년간 창업자들의 성공담과 노하우를 담아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했다.

"GM이 인수해 회사가 정상화하더라도 희망센터의 역할은 지속돼야 합니다. 퇴직 이후를 길잡이해준다는 게 상여금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방향타가 아니겠습니까." 金팀장의 강한 신념이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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