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日 시가현 소도시의 '풀뿌리 혁명' 외국인에 첫 투표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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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마이하라(米原)초(町·일본의 기초자치단체)는 일본 중서부 시가(滋賀)현의 소도시다. 인구는 불과 1만2천여명.

지난달 31일 이곳에선 전국에서 몰려든 언론사들의 열띤 취재경쟁이 벌어졌다. 재일동포 등 영주 외국인이 일본 최초로 투표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이날 투표한 외국 국적 주민 13명 중 11명이 재일동포, 나머지는 미국인과 필리핀인 한명씩이라고 민단 관계자가 전했다.

아침 일찍부터 초 사무소 1층에 마련된 기표소를 찾아 난생 처음으로 한표를 행사한 동포들은 흐뭇한 표정이었다. 노환으로 입원 중이던 동포 2세 정복순(鄭福順·74) 할머니는 병원으로 찾아온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을 통해 투표했다. 鄭할머니는 "그동안 투표일만 되면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더 들어 고향생각이 간절했는데 오늘은 너무 기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구에 비해 외국인에게 폐쇄적으로 알려진 일본사회에 '작은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투표 안건은 마이하라초와 이웃도시와의 행정구역 통합 여부였다. 하루 동안 진행된 투표 결과 통합하기로 결론이 났다.

무라니시 도시오(村西俊雄) 초장은 "지역사회가 발전하려면 국적에 상관없이 서로 뭉쳐야 한다"며 "오늘 투표가 일본 내에서 외국인 차별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투표소 앞에서 만난 일본기자들은 한국이 지난달 영주 외국인의 지방 참정권을 허용한 데 큰 관심을 나타냈다.

재일동포 53만여명 등 일본 내 영주 외국인 60만여명은 그동안 세금납부 등 의무는 다하면서도 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안상봉(安相鳳) 시가현 민단단장은 "일본 정부가 소규모 지자체간 통합을 적극 추진하고 있어 앞으로도 곳곳에서 주민투표가 실시될 것"이라며 "비록 초보 단계의 참정권인 주민투표 참가에 불과하지만, 민단이 벌이는 영주 외국인 지방참정권 입법화 운동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현재 자민당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당들은 외국인 주민의 지자체·지방의회 선거 투표를 허용하는 지방참정권 부여에 찬성하고 있다. 자민당도 1999년 공명당과 연립여당을 구성하면서 영주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키로 약속했으나 당내 우파의 반대로 계속 미루고 있다. 돗토리(鳥取)현 히노(日野)군도 외국인의 지방발전위원회 위원선거 투표·출마를 허용할 움직임이다.

마이하라=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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