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권' 찬반 논란 : 시민·보수단체 3개월째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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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사상이나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군 복무를 거부할 수 있게 하자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 여부를 놓고 시민단체간에 찬·반 논쟁이 뜨겁다. 논쟁의 발단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집총(執銃)을 거부하는 교리로 해마다 6백여명이 실형을 선고받고 있는데 항의, 지난해 말 국가 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한 것. 이후 시민단체들간에 찬·반 모임이 결성되고 3개월째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찬성=먼저 이번 논쟁의 포문을 연 쪽은 평화인권연대·인권운동사랑방 등 10여개 진보 인권단체들. 이들 단체가 '여호와의 증인'이 진정을 하고 그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자 지원모임을 발족했다. 이어 지난달 4일에는 참여연대 등 30개 단체와 손잡고 '병역 거부권 실현을 위한 연대회의'를 출범시켰다.

이들의 주장은 양심적 이유로 전쟁·살상에 반대,군 복무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는 현행 병역법은 신체와 사상의 자유 등 국민 개개인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것이다.

연대회의는 "특정 종교나 개인의 문제로 치부돼온 병역거부에 대해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를 벌이겠다"며 "우선 병역 거부자가 사회봉사활동 등으로 군 복무를 대신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출범식에서 밝혔다.

연대회의는 지난달 27일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함께 민간단체 참가단을 구성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제58차 유엔인권위원회에 파견하는 한편,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입법을 위한 로비도 벌이고 있다.

▶반대=연대회의의 이같은 움직임은 자유시민연대·참여네티즌연대·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말 "개인의 권리가 4천만에 공정하게 적용되는 국민적 의무에 앞설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던 이들 단체는 연대회의 발족식에 맞춰 참여 단체인 참여연대 앞에서 거리집회를 벌이고 각종 매체에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에 반대하는 글을 싣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 단체는 연대회의가 추진하고 있는 대체복무제에 대해선 "북한과 대치 중인 한반도의 현실을 외면한 발상"이라며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합법적 병역 회피 수단이 생겨 아무도 군에 가려 하지 않을 것"이란 이유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토론회=지난달 2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한변호사협회(회장 정재헌)가 주최한 '양심적 병역거부와 인권 토론회'에서도 이런 양측의 치열한 공방은 계속됐다.

연대회의의 입장을 대변해온 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수는 "법원이 수차례에 걸쳐 '종교적 교리를 내세워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고 판시했지만 이런 결정에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며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차별과 학대를 뿌리뽑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재향군인회 산하 안보연구소 최정석 소장은 "병역거부권 도입은 특정 종교집단에 대한 특혜일 뿐"이라며 연대회의측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선 검찰에 의해 병역법 위반 혐의로 두차례 영장이 청구됐으나 모두 기각된 바 있는 병역거부 불교신자 오태양(28)씨가 특별진술을 위해 단상에 올랐다가 보수단체 소속 방청객들의 야유를 받고 내려오기도 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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