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東源 특사가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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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남북한이 임동원(林東源) 대통령 특사의 4월 초 평양 방문을 합의한 것은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매우 긍정적이다. 양측이 지난 2개월여의 비밀접촉에서 장관급 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의 재개 등 교류협력 사업을 강화키로 절충한 데 이어 대통령 특사의 파견까지 합의함으로써 남북관계의 진전이 기대된다. 정부가 이번 특사 파견을 통해 가장 주력해야 할 사항을 당부하고자 한다.

우선 정부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발언 이후 조성된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걷어내기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핵·미사일·재래식 무기 등에 대한 우리와 미국의 입장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남북 간 무장력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관계 구축을 위한 쌍방 간 회담의 정례화나 핫 라인 개설 등 이미 오래 전 합의된 사항의 실천방안을 이끌어내야 한다. 아울러 북·미 간의 진지한 대화 재개를 통한 관계개선을 이뤄내야 국제사회는 물론 남쪽의 대북 지원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음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林특사도 지적했듯이 북한이 현재의 대미정책을 고수하는 한 2003년의 한반도 핵위기 상황은 예정된 코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정부는 남북 양측간에 이미 합의된 각급 회담의 제도화를 담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정부는 아리랑 축전과 월드컵 행사에 남북 고위급 인사의 상호 교환 방문도 추진하는 듯하다. 물론 교류 활성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촉진제 역할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두 차례 이벤트성 깜짝 쇼를 기획해 정치적으로 활용할 생각을 해선 남북관계 개선의 정례화나 제도화를 이룰 수 없다. 지금까지의 남북관계가 주로 정치적 활용성을 감안해 추진됐기 때문에 양측간 합의가 금방 물거품이 됐음을 우리는 지난 경험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정권차원을 넘어 남북간 대화와 협력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그것이 햇볕정책을 살리면서 남북간 긴장완화와 교류·협력을 제도화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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