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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꽹과리 응원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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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꽹과리는 들녘 30리까지 들리는 악기다. 이런 성량 때문에 우리네 삶의 핵심에서 울렸다. 모 심으러 나갈 때 울렸고, 김매기를 하면서 울렸으니 우선은 벼의 태교음악이었다. 추수를 하면 잔치마당에서 울려 마을 사람들을 운집시켰다. 그리고 각자의 몸 속에 숨은 신명들을 모조리 호명했다. 말하자면 몸에 고인 혈전이나 세상살이 앙금이 다 빠지는 피부호흡을 체험케 하는 축제의 소리였다. 그렇게 그릇만 한 작은 악기가 마을 삶의 구심이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총알을 만든다고 놋그릇을 빼앗아갈 때 어떤 상쇠 한 분은 꽹과리를 땅에 묻었다 한다. 좋은 때가 되면 꽹과리를 울려 마을을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꽹과리 소리가 그리우면 밤에 몰래 파서 만졌다. 치고 싶어 소름이 돋지만 소리 나면 빼앗길세라 그냥 만져만 보고 다시 묻었다고 한다. 그분 성함은 모르지만 촌로에게 들은 이후 가끔은 꽹과리를 쓰다듬는 그분의 지문을 상상했었다. 그 지문이 실제 움직이는 것을 본 것은 사물놀이의 이광수 명인을 만나면서다.

꽹과리는 채로 치는 오른손도 중하지만 악기를 드는 왼손도 장히 중하다. 왼손은 꽹과리 판을 막고 열면서 울림의 길이와 크기를 조절한다. 이광수 명인의 왼손 놀림은 하도 미세해 지문의 끝이 닿는 경우와 골이 닿는 경우의 소리가 천지차이다. 이 편차를 이용해 절묘한 소리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가장 빠른 장단인 ‘휘몰이’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데, 소리보다 빠른 오른손 타점의 앞과 뒤를 왼손으로 막았다 떼며 여운과 울림을 간결하게 한다. 실제 연주를 보면 잘 닦아 반짝이는 꽹과리를 치는 그 모습이 보름달이 후드득 떨어져 품 안에서 빛나는 듯하다.

드디어 오늘 밤, 한국과 아르헨티나가 결전을 벌인다. 또다시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꽹과리를 울릴 것이다. 당부하건대 초보라면 꽹과리 잡는 법부터 바꾸자. 왼손 검지를 꽹과리 속에 넣어 들어야 한다. 닿는 곳을 최소화 해야 맑은 울음이 나는 것이다. 그냥 붙잡고 치면 말한 대로 깨진다. 짧은 글로 오묘한 타법을 어찌 배우겠는가. 하나 분명한 것은 꽹과리는 악기이자 흉기다. 오죽하면 사격장 소음보다 큰 부부젤라와 비교하겠는가. 아쉬운 대로 기본의 기초 ‘잡지 말자’를 실천하면 곧바로 흉기가 도구가 된다. 그리고 악기의 감동을 맛보려면 사물놀이 CD를 들어보자. 사납지만 암수 서로 정다운 소리, 암꽹과리와 수꽹과리가 주고받는 ‘짝쇠’가 그려내는 소리의 만다라를 만날 것이다. 바로 그 소리가 세계인의 귀를 번쩍 열게 한 꽹과리 소리다. 어찌 귀를 막는 부부젤라 소리와 비교하게 한단 말인가.

진옥섭 KOUS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