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스라엘軍 병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베들레헴=이훈범 특파원]'차할(이스라엘 방위군)' 병사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상냥했다. 베들레헴 입구 검문소에서 만난 아론 레프코비츠(20)도 그런 청년이다.

"1년 후 제대하면 6개월쯤 세계여행을 하고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라고 장래 계획을 밝힌 레프코비츠는 "만약 그때까지 죽지 않는다면…"이라고 덧붙이며 웃었다.

그는 "군대가 싫다"고 했다."팔레스타인인들이 밉지만 그들과 싸우고 싶지 않다"는 말도 했다. "한국 청년들도 군대를 가야 하며 한국 역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대치지역 중 하나"라고 말해줬더니 다 알고 있다는 듯 "우리처럼 실전(實戰)은 하지 않지 않느냐"며 피식 웃는다.

갑자기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 언덕 너머가 벳찰라다. 새벽녘에 저곳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언덕까지 기어와 총을 쏘아댄다. 그러면 우리도 가진 실탄을 다 써가며 언덕을 향해 죽어라고 갈긴다. 하지만 날이 밝은 뒤 가보면 아무 것도 없다."

그런 날이면 검문소를 지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더 미워보여 심통도 부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의 잔혹행위가 사실이냐"고 슬쩍 찔러보았다. "보지는 못했지만 만약 있었다면 그것은 잘못"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멀찌감치서 듣고 있던 한 병사가 우리를 향해 외쳤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다 죽어야 한다. 싸움을 걸었으면 값을 치르는 게 당연하다. 공짜 전쟁은 없다."

레프코비츠는 "저런 친구들을 군대 은어로 '메슈가(골통)'라고 부른다"며 "부대 내에 저런 메슈가들이 3분의1쯤 된다"고 말했다. "다른 3분의1은 그럭저럭 적응하는 부류고 나머지는 군생활을 힘들어 하는 친구들"이라고 설명했다.

남자는 36개월, 여자는 22개월 동안 의무복무를 해야 하는 이스라엘이지만 전방이라도 3주에 한번씩 휴가를 갈 만큼 한국군보다 근무여건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군대에 적응하지 못해 탈영을 하거나 군에 가지 않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레프코비츠는 "휴가 후 귀대하지 않고 키부츠(집단농장)에 여자친구와 함께 숨어 있다 붙잡혀온 동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가자지구나 요르단강 서안 등 전방에 배치받지 않기 위해 허위진단서를 꾸미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텔아비브에서 만난 한 여군의 귀띔이었다.

하지만 메슈가건 아니건, 전방에 있든 후방에 있든 약속이나 한듯 병사들이 똑같이 하는 말이 있다. "싸우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아직 사람을 죽여본 적은 없지만 나를 공격하면 죽일 것"이라고 레프코비츠는 말했다. 선량하고 앳된 표정의 하얄(병사)들 얼굴에도 '전쟁의 광기'가 스며들 공간은 있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