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권 제한…전해 들은 것도 '증거' "美 테러犯 재판규정 인권침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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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국이 21일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 붙잡힌 알 카에다와 탈레반 전사 등에 대한 군사재판 규정을 확정, 발표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이 규정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한을 제한하는 등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면서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 규정은 9·11 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지시로 국방부가 만든 것으로 현재 쿠바 관타나모 해군기지와 아프가니스탄 미군기지에 수감된 알 카에다·탈레반 전사 5백50여명과 9·11 테러 관련 용의자에 대한 재판에 적용된다.

◇규정의 주요 내용=알 카에다와 탈레반 대원들에 대한 군사재판은 미군이 임명한 3~7명의 장교들로 구성된 군사재판위원회에 의해 진행된다. 유죄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원칙은 이 경우에도 적용되며, 무료로 군 변호인을 선임하거나 자비로 민간변호사를 선임할 수도 있다.

피고인에 대한 유죄 인정은 배심원의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보통 군법회의와 달리 군사재판위원회 위원 3분의2 찬성만으로 가능하다.

다만 사형선고는 군사재판위원회 위원 7명의 만장일치가 있어야 한다. 형량에 대한 최종 결정은 미 대통령이 한다. 상소하는 정상적 절차 대신 군 판사와 민간 변호사로 구성되는 3인 재판부에 항소할 수 있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처한 비상시국을 처리하려면 (기존의 일반·군사법정과)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문제 조항=피고인들이 일반적인 항소절차를 밟지 못하고, 미 국방부가 임명한 3인 재판부에 항소할 수 있게 한 것은 명백한 항소권 제한이라는 것이 인권단체들의 주장이다. 또 군사재판위원장에게 증거 능력 인정 폭을 광범위하게 부여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특히 증인들이 직접 보지 않고, 단지 전해듣기만 한 '전문(傳聞)'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고, '이성적인 사람에게 실증적인 가치를 갖는 것'도 증거로 채택할 수가 있게 한 조항은 대표적으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조항이라는 것이다.

미군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획득하거나 노획한 자료가 법정에 제시될 경우에도 증거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또 사형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 출신의 알 카에다나 탈레반 포로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질 경우 국제적인 시비가 일 수 있다.

◇인권단체 우려=국제사면위는 성명을 통해 "군사재판위원회가 사법 행정에 대한 신뢰와 '법 지배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마이클 포스너 인권을 위한 변호사 위원회 이사장은 "항소 과정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로이터 통신은 "몇몇 조항의 경우 국제적인 법률 관행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법률 전문가들의 지적"이라고 보도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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