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공격·그물 수비 좋아졌네~ 히딩크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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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축구 국가대표팀이 실로 오랜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국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20일 핀란드와의 평가전에서 대표팀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즐겨 쓰는 표현대로 경기를 주도(dominate)했다. 황선홍은 '킬러 본능(killer instinct)'을 번득이며 혼자 두골을 따내 골 가뭄에 종지부를 찍었다. 히딩크호는 드디어 본궤도에 진입한 것일까. 몇가지 궁금증을 풀어보자.

◇왜 갑자기 달라졌나=북중미 골드컵 때는 물론 불과 일주일 전 튀니지전과 비교하더라도 너무나 달라진 모습이었다. 선수들의 움직임도 활발했고, 조직력도 좋았다.역시 황선홍·최용수·설기현·안정환·윤정환·유상철 등 노련한 해외파 선수들의 가세가 큰 힘이 됐다. 이제 제대로 된 팀이 됐다는 안정감이 코칭스태프나 선수들 사이에 자리잡았다. 더구나 마지막 테스트라는 생각에 안정환·윤정환 등이 최선을 다해 뛰었고,공격수들도 골을 넣겠다는 투지에 불타올랐다.

◇누가 특히 잘했나=당연히 후반 41분과 43분 연속골을 터뜨린 황선홍이다. 그러나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의 공로도 이에 못지 않다. 핀란드 공격의 핵인 미카 바이리넨의 발을 꽁꽁 묶었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도 "리버풀에서 뛰는 스트라이커 야리 리트마넨이 왔더라도 김남일 앞에서는 맥을 못췄을 것"이라고 말했다.

◇핀란드는 어떤 팀인가=지난해 평가전 상대인 세네갈·나이지리아·크로아티아보다는 약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안티 무리넨 핀란드 감독은 "이번 대표팀에는 리트마넨·히피야·콜카 등 지난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뛰었던 베스트 멤버 가운데 5~6명이 빠졌다"며 "베스트 전력을 1백점으로 볼 때 50점 정도의 팀"이라고 말했다. 베스트 멤버로 한국과 재경기를 한다면 어떤 결과를 예상하느냐는 질문에는 "0-0 또는 1-1"이라고 답했다.

◇해외파들은 어땠나=확실히 국내파들에 비해 골감각이나 순간 동작, 그리고 경기를 풀어가는 센스가 뛰어났다. 안정환은 반박자 빠른 슈팅감각, 윤정환은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는 공간패스가 돋보였다. 황선홍·최용수 역시 특급 골잡이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골드컵 때의 부진은 부상으로 인한 훈련 부족, 또는 컨디션 저조로 해석된다.

◇차두리는 왜 계속 기용하나=차두리는 그동안 출전한 10경기에서 단 한골도 넣지 못했다. 아직 경기 운영이 미숙하고 킬러의 매서움도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히딩크 감독이 그를 계속 기용하는 이유는 "경험을 쌓도록 하기 위해서"다. 히딩크는 차두리가 유럽 선수들을 상대할 만한 체력과 스피드를 갖고 있다고 보고 계속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종 엔트리에 들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수비는 홍명보가 합류한 이후 안정됐다고는 하지만 스피드가 떨어지는 탓에 공격시 상대를 제대로 압박하지 못하며, 상대의 빠른 역습에 당할 가능성이 있다. 공격력도 핀란드전에서 무수히 많은 득점 찬스를 놓친 뒤 막판에 황선홍의 두 골로 체면치레를 한 만큼 아직은 만족스럽지가 않다.

유럽 전지훈련을 마치고 4월 초 다시 소집되는 대표팀은 거의 그대로 본선 멤버가 된다고 볼 수 있다. 2개월 정도는 확정된 멤버들끼리 발을 맞춰봐야 하기 때문이다.

라망가(스페인)=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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