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送하면 자살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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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국에서 떠돌고 있는 수만명의 탈북자 문제가 다시 국제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탈북자 25명이 어제 중국 베이징(北京)주재 스페인대사관에 기습적으로 들어가 난민지위를 요구하면서 농성에 들어갔다. 그들은 한국행을 바라고 있다. 탈북자 또한 넓은 의미의 우리 국민이라는 점에서, 우리 정부는 스페인 정부와 협력해 중국과 긴밀히 교섭, 그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도록 최선을 다하기를 당부한다.

우선 중국 정부는 지난해 6월의 선례에 따라 이번 사건을 원만하게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 당시 중국 정부는 베이징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 들어가 난민지위 및 한국행을 요구했던 장길수군 일가족 7명을 4일 만에 제3국 출국 형식으로 서울에 올 수 있게 했다. 중국은 그들의 난민지위를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탈북자에 대한 제3국 출국→한국행 허용의 처리방식을 신속하게 택해 인권문제를 배려한다는 매우 긍정적인 인식을 국제사회에 심어주었다.

중국 정부는 25명이 망명을 요청하면서 발표한 성명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들 대부분이 지난해 탈북했다가 중국 공안당국에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돼 억류생활을 한 뒤 재탈북했다고 한다. 그런 그들이 다시 북송될 때 겪어야 할 상황은 너무나 참담할 것이다. 그들이 오죽했으면 북송될 경우 휴대한 극약으로 자살하겠다고 호소했겠는가. 중국이 북한과 관련해 정치적 고려를 하기에 앞서 그들에게 인도적 배려를 해야 할 심각한 사정이기도 하다.

지난해 장길수군 사건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이 문제를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스페인은 지난해 북한과 인권문제 협의를 약속했던 유럽연합(EU)의 의장국이다. 북한이 EU와의 관계개선을 추구하는 현실에서 이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북한이 올 봄 야심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아리랑축전에 해외관광객 20만명 유치를 위한 환경조성을 위해서도 '묵인'정책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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