面壁透過 왜 불가능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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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가 벽을 통과하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가 튼튼한 벽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원자의 모습을 알게 되면, 이 당연함이 다시 의아해진다.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전자로 이뤄져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의 무게는 거의 비슷하고, 그 질량은 전자 질량의 1천8백배 정도다. 가장 간단한 수소 원자를 생각해 보자. 수소 원자는 하나의 양성자와 하나의 전자로 구성돼 있다. 양성자를 반지름이 10㎝ 정도 되는 공에 비유한다면 수소 원자의 반지름은 5㎞, 지름은 10㎞ 정도 된다.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가 9천m에 못 미치는 것을 생각하면, 이 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지름이 10㎞나 되는 이 공의 99.94% 정도의 질량은 반지름이 불과 10㎝인 원자핵의 내부에 들어 있다. 나머지 0.06% 정도의 질량만을 차지하고 있는 전자가 그 넓은 나머지 공간을 돌아다닌다. 그러므로 원자핵 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간은 거의 텅 비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아는 물질은 모두 그러한 원자들로 구성돼 있으므로, 세계는 거의 비어 있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빈 공간이나 마찬가지인 우리가 왜 또 다른 빈 공간인 벽을 뚫고 지나가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원자의 외곽을 구성하는 전자 사이의 전기적 반발력 때문이다. 전기적 반발력의 힘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따라서 두 전자의 간격이 가까워지면 엄청난 반발력이 생긴다. 이 때문에 하나의 원자가 다른 원자를 뚫고 지나가지 못하므로, 벽이 부서지지 않는 한 우리는 벽을 뚫고 지나갈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우리 몸과 벽이 무언가로 꽉 차 있기 때문에 우리가 벽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보면 벽도 우리도 텅 비어 있다. 그래서 벽도 우리 몸도 그 자체가 어떤 물질을 통과시키지 못하게 하는 고정된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중성자나 중성미자와 같이 전기적 반발력을 일으키지 않는 물질은 상당히 자유롭게 벽을 통과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로 둘러싸인 다른 원자나 분자를 만나게 되면 전기적 반발력이라는 상호 연관의 인연이 나타난다. 그 결과 우리는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벽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이 경험에 근거해 벽이란 통과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관념을 갖게 되고, 이 관념으로 세계를 우리 마음 속에 그리게 된다.

이를 화엄경에서는 "마음은 능숙한 화가와 같아, 갖가지를 그려낸다. 일체의 세계 중에 이렇게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없다"고 하였다. 벽은 통과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니지만, 통과할 수 없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 속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 속에 나타나는 세계에 대한 상은 대상 자체에 의해 그대로 각인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와 대상 사이에 성립되는 어우러짐에 의하여 우리의 마음이 대상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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