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그라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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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폴리 미술관은 19세기 초부터 '비밀의 방' 운영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고관대작만이 출입할 수 있었던 이 방에는 1백2개의 '특정물'이 전시됐다. 처음에는 왕의 명령에 따라 개방이 금지됐다. 굳게 닫혀진 그곳이 비너스상이나 갖가지 누드와 관련된 회화, 조각품들이 수집된 '외설물의 방'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비밀스러운 작품들이 계속 수집되면서 일반인들의 호기심이 커지자 슬그머니 공개됐다가 다시 폐쇄되기를 거듭했다. 문제의 걸작들이 도덕성을 퇴폐시킨다는 비난이 일면서 한 때는 3중 열쇠가 채워졌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폼페이에서 발견된 외설스러운 작품들이 추가되면서 이 전시관은 각국 관광객들의 관람코스로 각광을 받고 미술 애호가들의 연구대상이 되었다.

지난 6일부터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을 통해 시리즈물로 방영되고 있는 히스토리 채널의 '포르노그라피의 역사'는 폼페이 유물과 중세교회의 에로스, 지금의 컴퓨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성적 체험에 이르기까지 포르노그라피의 역사를 파헤치고 있다. 영국 민영방송인 채널4가 10년에 걸쳐 제작한 이 작품은 기술매체가 포르노그라피의 발전에 미친 영향과 미래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 것인지에 대한 예측이 담긴 광범위한 기록물로 호평을 받았다.

포르노로 약칭되는 포르노그라피(pornography)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pornographos로 창녀(porno)에 관하여 쓰여진 것(graphos)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영어에서는 외설스러운(obscene)문학을 지칭한다. obscene은 '무대(scene)밖의 것', 즉 무대에서 표현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것으로 포르노라고 일컬어졌다. 문학이나 회화·조각 등에서 포르노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기준은 시대상황에 따라 들쭉날쭉했다. 그러나 포르노를 통해서 여성을 성적 도구화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르네상스 시대가 지난 후 2백년 동안 유럽 전역에서 횡행했던 마녀사냥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성의 성적 타락'을 무기로 삼았다는 사실이 대표적인 예다.

요즘 각종 매체가 융합하면서 포르노그라피가 더욱 논쟁적인 이슈가 되었다. 인터넷 음란물은 학부모들을 괴롭히는 현안이다. 케이블TV 및 위성방송 등에서 집중 방영되고 있는 성인영화 채널의 선정적 프로그램의 품격을 놓고 다시 시비가 일고 있다. 저질 외설 프로그램에 청소년들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확실한 잠금장치는 없을까.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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