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유정호 박사 저서서 지적 "한국경제, 관치 청산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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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금 한국경제는 관치경제의 청산이 급선무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체제 논쟁도 관치의 폐해를 시장경제의 폐해로 잘못 인식하기 때문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한 원로 경제학자가 현 정부 출범 이후 부쩍 잦아진 '성장과 분배'에 관한 논쟁에 대해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라며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올 연말 KDI 사상 처음으로 정년퇴직하는 유정호(60.사진) 선임 연구위원은 최근 펴낸 '관치청산-시장경제만이 살 길이다'라는 저서에서 "우리 사회에서 시장경제에 대한 몰이해가 심각한 대립과 분열을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 박사는 "우리 사회에 관치 없는 시장경제 경험이 없다 보니 많은 사람이 관치경제와 시장경제를 동일시하면서 정경유착.부정부패 등 모든 문제를 시장경제의 폐해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며 "결국 경제문제의 진단과 처방이 엇갈리고 엉뚱하게 체제 선택의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쪽에선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해 친 기업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하고, 다른 편에선 시장경제 체제를 바꿔서라도 소외계층을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그러나 성장.분배론 어느 쪽도 관치가 문제의 뿌리라는 인식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관치라는 근본적인 문제의 청산 없이 이 두 처방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성장 제일주의 아래 정경유착이 지속되는 관치경제를 택하거나, 혹은 대중 영합주의 아래 정부와 소시민.소외계층이 유착하는 새로운 관치경제를 택하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지난 10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초청강연에서도 "참여정부 이후 주목받고 있는 386세대들도 진정한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 없이 대중인기에 영합해 신관치주의로 나가려는 모습이 보인다"고 비판했다.

관치 청산을 위해선 대통령이 검.경찰, 국세청, 국가정보원 등 4대 권력 기관장을 임명할 때 국회 동의를 의무화하고, 행정부 밖에 규제심판소를 설치해 힘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박사는 서울대 법대와 미국 위스콘신대를 졸업한 뒤 1981년부터 KDI에서 줄곧 재직해온 국제무역.통상 전문가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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