告解聖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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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신부님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가톨릭 전례(典禮)에 따르면 지난주부터 사순기(四旬期)가 시작된 탓이다. 사순기는 부활절 이전 40일에 걸친 참회의 기간으로 모든 가톨릭 신자는 이 기간에 의무적으로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 신부들은 교회법에 따라 죄를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려는 신자들과 일대일 상담을 해야 하기에 이맘때면 늘 촌음을 아껴 쓴다.

흔히 '교회는 물과 눈물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물은 세례를 주는 물이고, 눈물은 고해성사에서 흘리는 눈물을 말한다. 고해성사는 영세(세례)와 함께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의식이다. 영세가 가톨릭에 귀의하는 첫 의식이라면, 고해성사는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간 신자가 용서를 받음으로써 다시 가톨릭의 정신으로 돌아오는 성사(聖事)다.

죄를 짓는 것은 인간이지만, 죄를 용서해 주는 권한은 신의 몫이다. 그래서 고해성사의 근거는 예수가 12명의 사도(Apostle)에게 '자신을 대신해 맡긴' 사죄권(赦罪權)에서 출발한다. 사도의 권한은 그 후계자인 주교(Bishop)들로 이어졌고, 주교들은 그 권한을 신부(Priest)들에게 위임했기에 전세계 모든 신부들은 신자들에게 '죄를 사하여 주는' 권한을 지닌다.

초기 기독교 시절 고해성사는 무척 엄격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삭발을 하고 온몸을 찌르는 말총 내의를 입고 신부의 발밑에 엎드려 공개적으로 죄를 고백하고 채찍질을 받기도 했다. 고해성사 이후에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빵과 물만으로 살아가는 금욕생활을 해야 했다. 요즘처럼 비밀이 보장되는 밀실(고해소)에 들어가 일대일 상담식으로 죄를 토로하고, 성경읽기나 봉사활동과 같은 벌(?)을 받는 식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이후다.

민주당 김근태 고문이 불법 정치자금을 고백하면서 '고해성사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했다. 비록 가톨릭은 아니지만 金고문은 신성한 형식을 빌려 죄를 고백하고 참회했다. 2백70명 의원 가운데 가톨릭 신자는 일부 대선주자를 포함해 60여명이라고 한다. 굳이 가톨릭이 아닌 정치인들도 金고문처럼 유권자들을 향해 고해성사를 해봄이 어떨까. 고해성사는 징벌이 아니라 용서를 위한 형식이니까.

오병상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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