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호 선발 잣대는 경기력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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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월드컵 16강 진출의 '염원'이 아무리 간절하다 하더라도 '현실'은 냉혹한 법이다.

'한국 3전 전패로 16강 진출 좌절-'.

대한축구협회가 지난해 12월부터 실시하고 있는 2002 한·일 월드컵 D조 예선 성적을 전망하는 인터넷 여론조사에서 참여 네티즌 2만여명 가운데 22.3%인 4천5백여명이 한국팀의 '3패'에 클릭을 했다. 월드컵 유치 이후 많은 언론사와 대기업 등에서 여론조사를 해왔지만 '3패'가 1위를 차지한 적은 없었다. 최근 한국 국가대표팀이 골드컵 등 원정경기에서 부진한 성적을 보인 탓일 게다. 대표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축구를 포함한 스포츠에서는 '이변'과 '기적'이 있긴 하지만 그 바탕에는 충실한 준비과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든 스포츠에서의 승리는 남보다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거나, 남보다 더 노력하는 쪽에 돌아가게 마련이다.

최근 확정된 국가대표팀 유럽 전지훈련 참가 선수 28명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조금 미덥지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가운데 25명이 프로팀에서 활약하는 선수고, 현영민·차두리·조병국 등 3명은 아마추어 신분으로 선발됐다.

대표팀의 부진과 관련해 국내의 많은 전문가가 이제 테스트보다 베스트 11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조직력 훈련에 나서주도록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주문했지만, 그는 아직도 테스트 단계에 있는 선수들에 대해 미련을 갖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현영민·차두리·조병국 등의 능력에 대한 축구인들의 종합적인 평가는 아직 월드컵 출전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영스타로 월드컵에 출전했던 고종수·이동국은 당시 모든 축구인이 천재성을 인정했던 선수들이었다. 이 두 선수는 청소년대표팀 시절 팀 전술의 중심이었다.이들을 월드컵 본선 멤버로 뽑았을 때 그 누구도 반대하거나 우려를 표하지 않았다.

히딩크는 이번 유럽 전훈을 23명의 월드컵 엔트리 선발을 위한 기회로 삼을 요량이지만 본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능력이 미흡한 선수를 데려가는 것은 귀중한 A매치 실전경험의 기회를 낭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대표팀은 최상의 선수들로 구성돼야 한다. 그래야 팀워크도 강해진다. 선수 선발과 관련해 가장 정확할 수 있는 사람은 감독보다 오히려 동료 선수들이다.동료들이 인정하는 선수들로 대표팀이 구성돼야만 팀내 불화나 갈등이 없어진다.

축구 선진대륙인 유럽에서는 '감독의 성공 여부는 선수를 선발할 때 이미 80% 이상 결정된다'고 얘기한다.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대목인 최종 엔트리를 선발할 때 모든 대표선수들과 축구인들이 인정할 수 있는 최상의 멤버로 진용을 짜줬으면 한다. 그래야 16강 진출이라는 '기적'과 '이변'이 탄생할 수 있다.

혹시 경기력 이외의 변수가 작용해 대표선수 선발이 이뤄질 경우 16강 진출의 염원은 그야말로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

<본지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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