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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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사람에게 '닭머리'라고 하면 소인배란 뜻이다. 하지만 닭의 볏을 계관(鷄冠)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닭은 관직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볏과 벼슬의 발음이 비슷한 것도 그런 인식을 갖게 만든 요인이다. 이처럼 닭은 부정과 긍정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닭은 상서로운 동물이었다. 전통 혼례식의 초례상에 오르는 닭은 일편단심을 뜻하는 기러기를 대신한다는 설이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닭은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초례상에 오른다는 인식이다. 초례청은 성스러운 자리다. 그런 자리에 잡귀가 끼면 가정이 태평할 수 없기에 닭을 올리는 것이다.
닭을 신성한 동물로 생각한 기록은 알지의 탄생담에도 잘 나타난다. 탈해왕 9년 시림(始林)의 숲 속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왕이 신하를 시켜 확인해 보니 나무 밑에 흰 닭이 울고 있었다. 나무 위에는 금궤가 있어 열어 보니 사내아이가 있었는데, 바로 경주 김씨의 시조인 '알지'다.
새벽을 알린다는 점에서 닭은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동물'로 여겨졌다. 한발 더 나아가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동물'로 상승했다. 옛이야기를 보면 닭의 울음소리 덕분에 귀신으로부터 살아날 수 있었다는 내용이 많다.
새해를 맞아 문에 붙이는 세화(歲畵)에도 닭이 등장한다. 닭그림을 붙임으로써 일년 동안 잡귀가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했던 것이다.
또 닭이 알을 낳는 것처럼 자손들이 번창하기를 기원하기 위해 석류와 함께 그린 화조도(花鳥圖)도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닭을 오랫동안 키우지 말라고 했다. 『규합총서』를 보면 닭은 3년 이상 되면 잡아먹어야 한다는 기록이 있다. 3년 이상 키운 닭은 둔갑해서 사람을 괴롭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닭이 둔갑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키우면 사람의 기를 받아 요물로 둔갑한다는 것이 우리의 전통적 사고방식이었다.
닭의 형상을 연상해 만들어진 이야기나 속담은 매우 부정적이다. 특히 닭의 머리나 울음소리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닭머리는 소인배,'작은 모임의 우두머리'란 의미로 사용된다. 닭머리가 매우 작기에 만들어진 비유다.생각이 단순하고 시야가 좁은 인물을 말한다.'촌닭'이라는 말도 비슷한 뉘앙스다. 시골사람이 처음 서울에 올라오면 어수룩해 보인다는 점에서 닭에 비유한 것이다.
닭과 관련해 가장 부정적인 의미는 여자를 암시하는 표현들이다.'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거나 '동네가 망하려면 첫 정월에 암탉이 운다'는 등. 전통적으로 여성이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을 금기시해온 탓이다.
요즘엔 자기 이익만을 앞세워 닭처럼 소리부터 지르곤 한다. 자동차 접촉사고가 나도 큰소리로 싸움하고, 자기 동네에 쓰레기 소각장이 들어선다고 시위를 한다. 하지만 우리 조상은 정중동(靜中動)을 더 강조했다. 언제부터 우리가 닭과 같은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는지 한번쯤 자숙할 필요가 있다.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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