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세는 사실상 보험료, 금융회사 머니게임만 부추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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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호 30면

금융개혁 논의가 최근 한곳으로 수렴되는 듯하다. 새로운 금융세 부과다. 은행의 위험 자산 매매에 세금을 물리거나(은행세)와 단기적인 외환거래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토빈세)이다. 정치인들과 정책 담당자들은 금융세를 물리면 금융위기 와중에 투입한 공적자금 때문에 빈 곳간을 다시 채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시장의 가격 결정 과정을 왜곡하는 투기 행위를 예방할 수도 있다고 강변하고 있기도 하다. 또 대형 금융회사들이 야기하는 금융시스템 불안을 줄일 수 있다고 힘줘 말한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금융감독 당국이 이루지 못한 금융시장 안정을 국세청이 이룰 수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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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금융 부문에 새로운 세금을 물리는 문제를 검토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 금융위기를 통해 금융과 실물 부문이 맞물려 있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실물 경제가 추락해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다. 반면 잘못을 저지른 금융회사 간부들은 정부의 구제 덕분에 살아남아 고액 보너스를 챙겼다. 물론 금융위기 재발을 막고, 위기 주범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정부가 세금이라는 장치를 동원할 수는 있다. 나는 세금이 한결 안정적이고 믿을 만한 금융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금융개혁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금융이나 외환 거래에 세금을 물리면 금융 시스템이 한결 튼튼해진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금융세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은행세와 토빈세 자체에 리스크가 숨어 있을 수 있다.

금융세는 두 가지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정부가 세금을 부과하면 우선 세수가 늘어난다. 또는 사회적으로 환영 받지 못할 행동을 하면 치러야 할 비용이 커져 금융회사의 돈 굴리기 패턴이 달라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세금의 재정효과와 행태변화 효과로 부른다. 이제 금융세를 부과했을 때 두 효과가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금융위기는 각국 정부에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다. 독일은 국내총생산(GDP)의 24%에 해당하는 돈을 풀어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아야 했다. 그 돈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채권을 발행해 조달해야 하는 돈이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가 은행세를 검토하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금융세로 거둬들인 세금이 재정적자를 얼마나 메워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재정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세는 너무나 투박한 정책이어서 금융위기를 막기 힘들 듯하다. 금융거래마다 리스크가 제각각인데, 국세청이 리스크 수준에 맞춰 세금을 물리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은행 등이 고수익을 좇아 고위험을 감수하는 행위는 줄어들지 않는다. 또 세금으로는 금융시장의 취약성이 제거되지 않는다. 오히려 금융거래를 줄여 가격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거래가 잇따라 이뤄지지 않고 뜸하면 가격 흐름이 들쑥날쑥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금융거래가 모두 투기적이지는 않다. 인간은 투기 여부를 쉽게 평가할 수 없다. 요즘 헤지펀드 등이 그리스나 스페인 채권을 많이 거래하고 있다. 무엇이 투기적이라는 말인가? 그 채권들의 가격이 떨어진다는 쪽에 베팅하는 게 투기적이란 말인가? 아니면 오르는 쪽에 베팅하는 것이 투기적이라는 말인가? 이 물음에 선뜻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또 정부가 금융거래 하나하나를 분석해 세금을 물릴 대상을 골라내기 어렵다. 일정한 조건 안에 들어가는 거래에는 무차별적으로 세금을 물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투박한 세금을 가지고 시장의 정상적인 가격 기능을 왜곡하는 투기거래에 대응할 수 있을까?

토빈세는 해외 투자 억제해
국제적 자본이동을 규제할 필요가 있기는 하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필요성은 입증됐다. 많은 경제학자는 자본이동을 100% 허용하는 게 적절하게 규제하는 것보다 위험하다는 데 동의한다. 또 그들은 선택적으로 자금 흐름을 조절하는 게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그렇다고 모든 나라들이 토빈세를 물려 자본이동을 규제하는 게 좋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토빈세를 물리면 국경을 뛰어넘어 이뤄지는 투자를 하는 데 비용이 커지게 마련이다. 이는 해외 투자를 억제할 가능성이 크다. 80년 이후 세계는 해외 투자를 자유롭게 한 덕분에 경제 활력을 한결 높였다. 모든 나라가 토빈세를 부과하면 더 이상 그런 활력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반적으로 너무 중요하고 너무 크다는 이유로 금융회사 파산을 억지로 막으면 뜻밖의 부작용이 발생한다. 금융회사가 이윤은 차지하면서 비용은 공동체에 떠넘기는 행위가 발생한다. 이는 곧 도덕적 해이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정교한 금융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리스크와 비용을 스스로 감당한 금융회사만이 이윤을 차지할 수 있는 제도를 개발해야 한다.

그런 금융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금융회사 자기자본의 최저 한도를 높이는 게 한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개별 금융회사 덩치도 자연스럽게 커진다. 은행이 자기자본을 투입해 트레이딩을 하는 행위를 인위적으로 막는 ‘볼커 룰’은 초과 이윤을 위해 규정을 우회하거나 위반하려는 세력을 키울 뿐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금융회사가 망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 금융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렇다면 세금을 내는 일이 보험 드는 일이 된다. 은행들이 세금을 불사하며 위험한 거래를 벌여 고수익을 좇게 될 것이다. 세금을 낸 대가로 여차하면 정부 구제를 받을 수 있는데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대안은 은행의 예금보험 시스템을 개혁해 보험료(가격) 체계를 바꾸는 일이다. 은행이 보유한 자산의 규모와 리스크 수준 등에 따라 예금 보험료를 높이거나 줄이는 방식이다. 저소득 금융 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소액 예금 전액 보호 원칙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대형 은행이 고수익을 좇아 위험도가 높은 자산을 사고팔면 더 많은 보험료를 지불해야 한다. 전액 보상도 받을 수 없다. 은행이 파산하면 주주들이 차지할 자산이 하나도 남아있을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주주들은 경영진을 압박해 고위험 게임을 벌이지 않도록 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감독 시스템은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통합 감독원칙 등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나라마다 서로 다른 법규를 악용해 고수익을 노리려는 금융회사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공통적이고 엄격한 구제 기준 등을 만들어 여차하면 정부가 도움의 손길을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없애야 한다. 헛된 믿음이 위험을 자초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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