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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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님은
주무시고
나는
그의 벼갯모에
하이옇게 수(繡)놓여 날으는
한 마리의 학(鶴)이다.

그의 꿈 속의 붉은 보석(寶石)들은
그의 꿈 속의 바다 속으로
하나 하나 떨어져 내리어 가라앉고

한 보석이 거기 가라앉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한 이별을 갖는다.

님이 자며 벗어놓은 순금(純金)의 반지
그 가느다란 반지는
이미 내 하늘을 둘러 끼우고

그의 꿈을 고이는
그의 벼갯모의 금실의 테두리 안으로
돌아 오기 위해
나는 또 한 이별을 갖는다.
-서정주(1915~2000)'님은 주무시고'중

잠든 임과 나의 근거리가 아슬아슬해 임의 잠 고이는 베갯모의 테두리 너머나 그만 하얗게 학(가벼움)이 되어 난다(위로). 그러나 임 혼자 붉은 보석(무거움)되어 잠의 바다로 가라앉으니(아래로), 가까울수록 더욱 멀어지는 이별, 곁에 있어 더욱 그리운 임. 유혹과 금지가 팽팽하게 당기는 안타까움의 에로티시즘. 쉿, 우리 임 잠 깨실라.
김화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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