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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경] 빠른 축구 자만심 일깨운 한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지난해 말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 선수 대부분이 꼽은 장점은 "전반적으로 빨라져 기동력이 좋은 축구를 한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임 이후 한국 축구는 콤팩트 축구를 지향하면서 빠른 선수들을 대거 기용하는 등 빠른 축구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왔다.

하지만 이날 쿠바와의 경기는 한국이 얼마나 스피드에 대해 과신을 하고 있었나를 확인시켜준 계기가 됐다.

쿠바는 전반 시작과 함께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한국 진영으로 밀고 내려왔다. 전반 2분 수비수 김태영의 헤딩이 한국 골문 쪽으로 흐르자 쿠바의 스트라이커 알베르토 델가도가 빠르게 공간을 침투해 순식간에 수비를 무너뜨렸다.

쿠바는 공격에서만 빠른 게 아니었다. 전반 8분 수비라인에서 길게 넘어온 공이 쿠바 진영 왼쪽 사이드라인을 따라가자 이천수가 재빠르게 따라붙었다.

이천수는 한국팀에서도 내로라하는 준족이지만 쿠바 수비수는 한발 앞서 출발한 이천수를 제치고 공을 따내 한국선수들을 놀라게 했다.

또한 전반 40분과 후반 14분에는 유상철이 골키퍼 김병지에게 어설프게 백패스를 하자 전광석화처럼 달려들어 하마터면 실점할 수도 있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수 아래로 낮춰봤던 쿠바의 빠른 발에 놀란 한국선수들은 후반전에 들어서면서 한 템포 빠른 패스와 짧은 패스를 구사하며 서서히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후반 30분을 넘기면서부터는 여러차례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한국팀의 스피드에 대한 성급한 자만심을 되돌아보게 만든 쿠바의 빠른 축구는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좋은 약이었다.

패서디나=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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