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 권한 'CIA' 국내문제 손 뻗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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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9.11 테러를 계기로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국내문제 개입 여부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CIA 헌장'이 미국 내 정보수집 활동을 금지하는 데도 미 정부가 테러를 막는다는 취지로 도입한 조치들이 불간섭 원칙을 무색케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점점 커지는 권한=그동안 해외 정보수집에 주력해 온 CIA는 지난해 10월 26일 반(反)테러법(일명 패트리어트법)이 시행되면서 국내 활동의 발판을 다시 마련했다.

이 법에 따르면 CIA는 미 대배심 재판정에 제출된 미국인들의 학력.재산.인터넷 이용.전화통화 내역 등 광범위한 정보를 법원의 허가 절차 없이도 이용할 수 있다.

이 법은 또 CIA 국장이 국내의 정보를 취합하거나 배포할 수 있는 권한도 새로 부여했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의회에 제출된 한 법안은 해외에서 미국으로 보낸 e-메일을 CIA가 영장 없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테러 이후 CIA에 오마사 빈 라덴 제거를 위해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도록 '무한 권한'을 부여했다. CIA는 최근 10억달러(약 1조3천억원)가 넘는 특별 예산을 배정받은 것으로 알려져 임무 수행에 한층 탄력이 붙게 됐다.

◇ 논란 및 파장=CIA가 국내에서 활동할 근거를 속속 확보하게 되자 미 시민단체들은 인권침해.정치사찰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헌장을 어기고 '혼돈(CHAOS)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수천명의 미국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던 CIA를 겨우 막았던 과거를 잊고 다시 이런 일이 발생토록 하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ACLU에 따르면 CIA는 1970년대 중반까지 국내 베트남전 반대론자,흑인.학생 운동가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으나 이런 사실이 발각된 뒤 국내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됐다. 엄청난 권한으로 재무장한 CIA를 통제할 장치나 법률이 마련되지 않으면 70년대 '워터게이트' 사건에 CIA 전직 요원이 연루돼 미국을 뒤흔들었던 것처럼 커다란 정치.사회적 파문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CIA의 역할을 해외 정보수집으로 묶어두면 테러 세력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반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9.11 테러가 일어난 것이 CIA가 미 연방수사국(FBI) 등 다른 수사기관과 정보를 공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존 애슈크로프트 미 법무장관은 지난해 12월 "국내 정보수집 강화에 반대하는 이들은 테러리스트와 한 편"이라고까지 주장했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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