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서로 "세금 깎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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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치권이 감세(減稅)정책을 쏟아내는 데 대해 정부 관계자들이 "국가재정 상태를 얼마나 고려했는지 모르겠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방선거(6월 13일)와 대통령 선거(12월 19일)를 앞두고 표만 의식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 한광옥(韓光玉)대표는 21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상반기 중 자영업자와 봉급생활자의 세금실태를 분석, 올해 소득분부터 세금을 대폭 경감하겠다"고 밝혔다. 韓대표는 "국민기초생활 보장 급여비를 높이고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우(朴宗雨)정책위의장은 "소득세율 조정이나 각종 공제폭 확대 등을 통해 세부담을 줄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朴의장은 "국민기초생활 보장 확대를 위해 필요하면 추경 편성도 고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금은 깎아주고 저소득층을 위해서는 돈을 더 풀겠다는 정책이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이강두(李康斗)정책위의장은 지난 20일 "세율인하.세원확대.탈세방지 등을 통해 세부담을 경감하고 조세부담률을 1~2%포인트 낮추는 방안을 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들은 당혹스럽다는 표정이다. 지난해 고친 세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또다시 감세 얘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기초생활 보장을 위해 3조4천억원의 예산이 책정된 게 엊그젠데 다시 대상자와 급여 수준을 늘리기 위한 추경 편성 얘기가 나오는 것도 곤혹스럽다.

재정경제부 고위 관계자는 당과 사전 협의가 없었음을 전제로 "정부는 지난해 각종 세금인하와 공제확대로 자영업자와 봉급생활자의 세부담을 총 2조3천억원이나 덜어줬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법을 고쳐 올해 소득분부터 적용하는 것에 대해 "세법을 고쳐 올해 소득부터 감세혜택을 주면 납세자들은 내년에 두차례에 걸친 감세혜택을 한꺼번에 보는 셈이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이뤄진 감세 효과는 올해 소득분부터 적용, 내년 1월 연말정산과 5월에 실시되는 종합소득신고 때부터 적용된다. 그는 "세율은 한번 내리면 장기적으로 세수감소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방침인 조세부담률 1~2%포인트 인하도 쉽지 않다. 22%에 달하는 조세부담률(국내총생산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1~2%포인트 낮추면 세수가 5조5천억~11조원(GDP 5백50조원 기준) 가량 준다.

나라 살림에 그만큼 구멍이 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임태희(任太熙) 제2정조위원장은 "현 정부 들어 세율은 오르지 않았으나 과세 저변이 넓어져 결과적으로 국민의 조세부담률은 높아진 측면이 있다"며 "과세 저변을 더 넓히면 세율을 낮추더라도 세수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전주성(全周省) 이화여대 교수는 "경기가 안좋아 세수 전망이 불투명하다"며 "여야가 장기적 재정건전화 방안은 제쳐두고 감세정책만 내놓는 것은 불안한 재정문제를 뒤로 미루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송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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