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공무원과 교수의 차이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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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꽤 오래 공무원으로 지내다 대학으로 이직해 인생의 이모작(二毛作)을 하게 된 필자는 "대학으로 옮기니 어떠냐"는 질문을 자주 접한다.

처음에는 그저 "공무원이나 대학교수나 다 같은 근로자 아니냐"거나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있느냐"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차츰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게 됐다. 예전보다 일하는 시간은 늘었는데도 몸과 마음이 덜 피곤한 까닭이 필자로서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 업무성과 묻히기 일쑤

가끔 옛 동료들로부터 "방학이 있으니 좋겠다"거나 "토요일도 쉴 수 있지 않으냐"는 부러움을 사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학으로 일터를 옮긴 뒤 '금.토.일'이 '금.금.금'으로 일상화되고 날밤을 새우기도 일쑤라서 일하는 시간은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무래도 공무원과 대학교수의 다음과 같은 차이점 때문이 아닐까.

첫째, 공무원은 과업(task)의 범위와 그 추진방향이 위나 바깥에서 주어지지만 교수는 자신의 재량으로 과업을 선택할 수 있다.

둘째, 공무원은 근무시간의 제약을 받지만 교수는 강의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신축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셋째, 공무원의 소득은 성과상여금 외에는 고정돼 있으며 그나마 성과금도 비중이 미미한 데 비해 교수의 소득은 능력과 노력에 따라 가변적이다.

넷째, 공무원의 업적은 소속기관의 그늘에 매몰되지만 교수의 강의.연구실적에는 실명제가 적용된다. 다섯째, 공무원의 성과는 상사의 주관적인 평가에 좌우되나 교수의 성과는 학생을 비롯한 수요자와 학계의 동료에 의해 비교적 객관적으로 평가된다.

요컨대 공무원은 강제적.획일적인 여건에서, 교수는 자율적.유연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점이 핵심적인 차이라고 하겠다. 모든 공무원과 교수를 정형화할 수는 없겠지만 마치 교수가 자동차를 운전하는 입장이라면, 공무원은 조수석에 앉아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공무원의 열의와 창의력이 높지 않고 갈등을 더 많이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정부의 사명(mission)과 운영시스템에 내재된 일정한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공무원의 근무여건을 대학교수의 그것과 최대한 근접하는 상황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선 교수의 연구업적과 마찬가지로 공무원이 입안.추진한 정책.법령.제도 등의 성과물에도 개인의 이름을 부기해야 한다. 아울러 교수 이력서에 강의.연구.봉사 및 학위취득자 배출 실적 등이 빠짐없이 기록되는 것처럼 공무원도 업적을 표준화.객관화하고 인사기록 카드에 이를 구체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그래야만 성취 동기를 높이고 근무평정(인사고과).승진 등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왕당파'니 '왕따파'니 하는 줄서기와 편가르기를 줄일 수 있다.

나아가 천편일률적인 공무원 보수체계를 기관.직렬.직위별로 다양화하는 한편 성과급의 요소와 비중을 강화해야 한다. 직무의 양과 질이 천차만별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직급과 근속연수에 좌우되는 보수체계는 정부성과의 하향 평준화를 부추기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 성여금 취지 맞게 운영을

따라서 정원과 보수에 대한 미시적인 근접통제를 폐지하고, 단위기관장이 옥석을 구분해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제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공무원 총정원제'를 '총액인건비예산제'로 대체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특정 과업의 수행에 대응해 보로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지난해 도입돼 홍역을 치른 성과상여금의 경우 문제점을 상당히 보완한 지침이 최근 발표됐지만 여전히 그 기본취지를 구현하기에는 미흡하다.

지금처럼 대다수(90~95%)의 공무원에게 기본급의 40% 내지 1백10%를 푼돈처럼 안분하게 되면 자칫 상여금이 능력과 노력에 대한 당근이 아니라 무능과 나태에 대한 채찍으로 변모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상여금의 지급범위는 좁히되 그 수준은 높여 '좁고 두터운 성과급'으로 재편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공무원도 대학교수처럼 개인의 이해와 조직의 성패가 부합할 수 있도록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 인색하지 말자.

朴宰完(성균관대교수 ·행정학)

▶필자 약력=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하버드대 정책학박사, 감사원 부감사관,재정경제원 서기관, 성균관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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