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스라엘의 민간 구호선 공격 규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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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세계의 시선이 또다시 중동을 향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구호품을 싣고 팔레스타인 가자항(港)으로 가던 민간 구호선박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국제인권단체 소속원 10여 명이 숨졌다. 발포 경위는 아직 확실치 않다. 탑승자들과 이스라엘의 주장이 엇갈린다.

분명한 것은 사건 당시 선박은 공해(公海)상에 있었고, 피해자 전원이 민간인이라는 점이다. 과정이 어떻든 민간인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공격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유엔은 정확한 진상조사를 통해 잘잘못을 가리고,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2007년 6월 강경 무장정파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한 이래 이 지역에 대해 강력한 봉쇄정책을 시행해 왔다. 육상과 해상의 모든 통로를 틀어막는 등 가자지구 내 150만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사실상의 고사(枯死) 작전이었다. 2008년 12월에는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 공격을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침공을 감행, 1400여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숨지게 했다. 이번 사건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압적 봉쇄정책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특히 이번 사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6척의 구호선에는 40여 개국 출신 600여 명의 시민운동가들이 타고 있었다. 사망자 대다수는 터키인이었다. 유엔이 즉각 안보리 긴급회의를 소집한 것은 이번 사건의 국제적 파장 때문일 것이다. 관련국들의 격앙된 감정이 새로운 중동전쟁의 불씨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더 큰 사태로 발전하지 않도록 각국은 자제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우선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진상 규명이다. 이스라엘은 자위권을 내세워 책임을 떠넘기기만 할 게 아니라 진상 규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중동분쟁을 막는 근본적 대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협상을 통한 평화 정착이다. 이스라엘은 강압적 봉쇄정책을 완화하는 등 협상의 여건을 조성할 책임이 있다. 이스라엘에 쏟아지는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을 이스라엘 정부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