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가난한 아빠 부자 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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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돈이야말로 유대인을 구원하는 단 하나의 무기라는 것을 늘 명심하여라."

국제 금융계의 황실(皇室),이스라엘 건국의 자금줄 '로스차일드가(家)'. 그 '유대금융제국'의 주춧돌을 세운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는 이 말과 함께 생을 마감했다.

1744년 프랑크푸르트의 게토(유대인 거리)에서 환전상 아들로 태어난 지 68년 만이었다. 그의 유지(遺志)는 프랑크푸르트.런던.파리.빈.나폴리로 쏘아진 다섯 개의 화살, 즉 그의 다섯 아들에 이어졌다.

신간 『가난한 아빠 부자 아들』(원제 Rothschild)은 1994년 마이어의 탄생 2백50주년을 즈음해 영국에서 출간됐던 책이다.

저명한 역사가이자 전기작가인 저자는 정교한 고증을 바탕으로 16세기 후반부터 1992년까지 로스차일드 가문의 역사를 드라마처럼 엮어 냈다.

하지만 이 책은 유대인 가족의 '신화'를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는다.유럽의 왕실들과 거래하며 고(古)화폐.예술품 등의 수집에도 일가를 이뤘던 이 '유대계의 메디치가'는 국제 금융 및 문화계의 계보 파악에도 실마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부와 권력 축적 과정에 대한 묘사는 21세기 한국인에게도 유효한 실무지침서의 역할을 한다. 말 그대로 나라를 하나 세울 정도였던 그들의 부와 권력은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 비결은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망과 정세 판단력, 그리고 결속력에 있었다.

타고난 사업가로 일찌감치 영국에 터를 잡았던 마이어의 셋째 아들 네이선이 워털루 전쟁의 결과를 영국 왕보다 먼저 파악, 정부 공채를 싼 값에 매입했다가 비싼 값에 팔아치움으로써 엄청난 차익을 챙겼던 것은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과 제 1.2차 세계 대전 때도 각국 왕실과 정부에 큰 돈을 빌려주고 밀수를 하며 돈을 '긁어' 모았다.

또 마이어는 자녀들에게 한 다발로 묶여있는 화살은 결코 꺾을 수 없음을 보여줬다는 스키타이 왕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며 결속을 강조했다. 근친혼이 많았던 것 역시 로스차일드가를 뭉치게 했다. 그물눈처럼 얽힌 혈족관계는 로스차일드가의 총자본을 유지시켜주는 역할도 했다.

세계사의 주도권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로스차일드가의 전성기는 지난 듯 보인다. 하지만 모건.소로스 등 IMF와 함께 우리에게 낯익은 이름들 역시 로스차일드가와 얽혀있다. 그들의 신화를 우리가 읽어봐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김정수 기자

<Note>

유대인들의 장사수완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아온 5천여년 세월을 통해 생존을 위한 본능처럼 발달한 게 아닐까. 하지만 전쟁까지도 돈벌이 기회로 이용하는 유대인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고울리만은 없다. 특히 로스차일드가는 음모이론의 단골 주인공. 한국 출판사측에서 3권에 덧붙인 '로스차일드 그룹의 비밀'은 타이타닉호, 저주받은 다이아몬드, 버뮤다 마의 삼각해역 등과 얽힌 그런 뒷얘기까지도 보여준다.그 대목은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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