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입방아 오른 '부시 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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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6일 오전 11시(현지시간)쯤 맨해튼 중심가인 57번가 인근에 있는 스타벅스 커피숍 안. 손님들이 앉은 다섯개의 테이블 중 네 곳에서 '부시'니 '프레첼'이니 하는 말이 들렸다.

옆 테이블에 앉아 가만히 이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한 손님은 "부시의 술버릇이 도져서 과음 때문에 넘어진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혹시 부부 싸움으로 상처가 난 걸지도 몰라"라는 말이 들려왔다. 어떤 이는 "프레첼을 씹다 엔론 사태가 떠오르자 '훅'하고 과자가 식도로 넘어 가면서 생긴 인재(人災)"라고 비꼬았다.

미국에선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갑자기 졸도한 이유를 놓고 입방아가 한창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3일 오후 프레첼 과자를 먹다가 식도에 걸려 쓰러졌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다 큰 어른이 과자를 먹다가 실신했다는 것을 쉽게 수긍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미국인들의 테러 공포를 반영한 듯 오사마 빈 라덴이 '프레첼 테러'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농담도 들린다.

한술 더 떠 미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백악관경호실(SS) 등이 프레첼의 출처를 놓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것인지 여부를 강도 높게 수사했다는 농담까지 돌고 있다.

이처럼 온갖 풍문이 퍼지면서 미국인들의 궁금증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목격자가 없었다는 말이 사실인지, 대통령이 과연 어떤 상표의 프레첼을 먹다가 졸도했는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평상시에도 "면도하다 베었다"며 반창고를 붙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국민 앞에 나타나곤 했기에 미국인들도 처음엔 프레첼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사고 다음날 언론을 통해 벌건 '훈장'을 왼쪽 뺨에 단 부시의 모습이 공개되면서 이런저런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프레첼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 이상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대(對)테러전.엔론사태 등 잇따른 대형 사건으로 뒤숭숭한 미국인들의 심경을 반영하는 건지 모르겠다.

신중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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