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법과 소시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국회의 입법활동은 어떤 목적과 의도에서 이뤄지는 걸까. 공익과 국민을 위한 충정에서일까. 물론 국회의원들은 그렇게 말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경제적 시각에서 뜯어보면 어떤 해석이 나올까. 미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프리드먼은 '숨겨진 질서(Hidden Order)'라는 책에서 '법률시장'의 경제원리를 냉소적으로 꼬집는다.

그의 복잡한 설명을 단순화하면 이렇다. 예컨대 100만명에게 각각 100원씩 손실을 주지만 100명에겐 50만원의 이익을 주는 법률이 있다고 치자. 이 법의 사회적 총비용은 1억원, 총이익은 5000만원이다. 폐지되는 게 합리적이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관심이 적은 다수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소수가 정치적으로 맞닥뜨릴 경우 후자가 승리하게 돼 있다고 한다. 후자의 경우 소수이지만 이익 관철을 위해 표.자금 등 높은 정치적 보수를 지급할 의사와 능력이 있다. 반면 전자는 숫자만 많을 뿐 결속력이 약하다. 개개인이 100원의 손실을 막기 위해 더 큰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정치에 나서려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어느 나라에서나 법은 소수의 이해당사자들에게 유리하도록 정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다수의 무관심층의 이익은 희생되고 만다. 이때 필요한 것은 희생되는 다수를 무마하기 위한 그럴 듯한 명분이라고 한다. 프리드먼은 대표적 사례로 농민 보호나 보호무역 정책을 들었다.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식량안보나 자국산업 보호를 내세우는 법률들이 버젓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지금 국회에선 공정거래법.사립학교법 개정안, 국가보안법 폐지안 등으로 여야가 팽팽히 대립 중이다. 엇갈리는 이해관계의 충돌이 국회에서 집약적으로 벌어진 셈이다. 여야는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정치적 보수를 극대화하기 위해 전력투구해야 할 입장이다. 프리드먼의 지적대로라면 직접적인 이해가 걸린 소수집단이 의원들에게 줄 보수를 쥐고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익이나 나라걱정이란 구호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100여년 전 비스마르크는 이런 말을 남겼다. "법과 소시지는 비슷한 데가 있다. 만드는 과정은 안 보는 게 좋다는 점에서."

남윤호 패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