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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꾼' 입단속 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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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다가올수록 집을 세 채 이상 가진 사람은 답답할 지경이다. 1가구 3주택자에게 양도소득세를 무겁게 물리는 제도가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지를 놓고 정부와 청와대 말이 아직까지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3일 기자간담회에서 "1가구 3주택자 양도세 중과세를 연기하는 방안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동산 보유세가 강화되면 다주택 소유자에게 집을 팔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내년 시행 방침에 변화가 없다"(11월 29일 청와대 김만수 부대변인), "이미 1년 전에 약속하고 예고한 사항"(11월 30일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이라는 청와대 주장과는 영 딴판이다.

이처럼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정책을 놓고 정부 관계자들의 말이 오락가락해 시장의 불확실성만 높이고 있다. 현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이를 둘러싼 토론 끝에 하나의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최근 상황은 '개혁 앞으로'라는 명분론과 '경기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맞부딪치는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 참여정부 내 개혁파와 실물경제를 총괄하는 재경부 간의 갈등과 견제가 정책 결정의 혼선으로까지 이어지는 형국이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정책입안 권한이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에서 재경부 내의 부동산 기획단으로 넘어갔지만 청와대는 재경부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원칙대로'만 외치고 있다. 게다가 개각설까지 나돌면서 재경부의 힘을 빼놓고 있다.

정부와 청와대, 열린우리당은 정책 혼선을 줄이기 위해 당.정.청 협의체를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협의체를 만든다 해도 자기 목소리만 내세우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국민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경제현실에 대한 종합적인 인식 없이 원칙론적인 개혁론만 내세우는 '훈수꾼'부터 가려내는 게 협의체보다 더 시급한 일이라는 얘기다.

이 부총리는 이날 "내가 한쪽에서 보면 힘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른 쪽에서 보면 안 그렇다"면서 "나름대로 내 목소리를 여기저기서 내고 다닌다"고 해명했다. 이 부총리가 이런 얘기까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최근 경제 난맥상의 원인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홍병기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