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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스티븐 호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세계적인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를 직접 본 것은 6년 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다. 대학을 휘감고 흐르는 캠 강변 널찍한 잔디밭 사이로 난 흙길을 무슨 벌레처럼 꼬물꼬물 기어가는 검은 휠체어.

그 위에 얹혀진 쪼그라든 육신은 불안해 보였다. 대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씽씽 지나쳐가는 좁은 흙길, 휠체어가 좌우로 흔들릴 때마다 박사의 몸통은 금방 떨어질 것처럼 등받이 옆으로 밀려나곤 했다.

호킹 박사가 온 몸이 마비되고 위축되는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생경화증)에 걸린 것은 만 20세 되던 1962년이다. 옥스퍼드대에서 학부 과정을 마치고 물리학자가 되기 위해 케임브리지대로 옮기려 준비하던 무렵 젊은 호킹은 자신의 신발끈을 묶기가 힘들어진 사실을 알았다. 짧으면 2년, 길면 5년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그런 그가 기적처럼 살아남아 8일 환갑을 맞았다. 축하하는 기념심포지엄이 오는 11일 케임브리지대에서 열린다.호킹 박사는 특별연사로 등장, 말을 못하는 그를 위해 기계음으로 목소리를 재생시키도록 인텔이 특별히 제작해준 컴퓨터로 광활한 우주를 얘기할 것이다.

호킹 박사가 이룬 현대물리학의 여러 업적은 난해하다. 그러나 그 이론의 상당 부분은 『시간의 역사』라는 그의 저서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88년 발간된 책은 40여개 언어로 번역돼 1천만부 이상 팔렸다.

우주 탄생 과정을 설명하는 '빅뱅(Big Bang.대폭발)'이나 에너지를 모두 태워버린 별의 죽음을 의미하는 '블랙홀(Black Hole)' 등이 호킹 박사 덕분에 알려진 우주물리학 개념들이다. 그래서 그는 '물리학의 전도사'로 불리기도 한다.

조금 더 학술적인 차원에서 호킹 박사는 현대물리학의 양대 이론이면서 서로 모순관계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시킨 '상대적 우주론자' 또는 '양자중력 이론가'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런 학문적 업적보다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그의 낙관적.긍정적 사고방식이다. 그는 루게릭병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나는 행운아"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마침 이론물리학을 전공해 몸뚱이가 덜 필요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골프나 조깅으로 시간낭비를 안해도 돼 더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이룬 가장 큰 업적을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오병상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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