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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분유 먹으면 죽는다 유언비어…60년대 소동 광우병 파동 때 떠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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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960년대 우리 국민의 영양 상태는 정말 비참했어요. 미국과 유엔 원조로 이만큼 먹고살게 됐으니 이제 우리도 다른 나라를 도와야죠.”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모수미(84·사진) 명예교수는 한국 식품영양학계를 개척한 인물이다. 이장무 현 서울대 총장의 큰어머니인 모 교수는 64년 유엔아동구호기금(유니세프)의 첫 한국인 장학생으로 선발돼 영국 런던대에서 국제영양학 과정을 수료했다. 이 과정은 세계보건기구(WHO)·국제식량기구(FAO)·유니세프가 구호활동을 펼칠 대상국의 인재를 양성하는 코스였다. 귀국 후 모 교수는 서울대 농가정학과를 거쳐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됐다. 그는 전국을 누비며 영양실조와 설사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돌봐 왔다.

“당시에는 단백질과 비타민B가 부족해 아이들의 입가가 갈라지고 머리카락이 빠졌어요. 얼굴에 파리가 붙어 있는 지금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 아이들 모습 그대로였죠. 구호 물자가 부족해 단백질 섭취를 위해 번데기와 메뚜기를 먹이기도 했죠.” 이 과정에서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미국에서 들여온 분유를 먹고 아이들이 배탈이 났는데 ‘미국이 분유를 먹여 한국인을 말살하려 한다’는 유언비어가 퍼진 것이다. 하지만 배탈의 원인은 한국인에게 락토스(lactose·젖당) 분해효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모 교수는 “최근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려 죽는다’는 사람들을 보며 50여 년 전 일이 떠올라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말했다.

88년 서울올림픽 때는 외신기자들과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식사 제공을 진두지휘했다. “자동화 설비가 도입되기 이전이라 식사 제공이 아주 원시적이었죠. 그래도 식중독 사고 한 번 나지 않고 잘 해냈어요.”

모 교수는 96년 대한지역사회영양학회를 창립했다. 이론 대신 지역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영양학 관련 문제들을 연구하는 학회다. 이 학회는 28일 서울대 생활과학대학에서 ‘국제영양·구호사업의 현재와 미래’ 심포지엄을 연다. 그동안 국내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해외에 어떻게 전파할지를 논의하는 자리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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