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 '3金시대 언론'을 끝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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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002년 새해를 맞았다. 불안과 희망,분열과 통합이 교차될 어려운 한 해를 맞았다는 비장한 마음가짐이 필요한 때다. 모든 새해가 아름답고 희망적이지만 이번 새해는 낙관만 하기엔 너무나 힘든 고비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역량과 인내, 지혜와 관용을 시험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이 관문을 통과할 때 비로소 우리는 내일의 희망과 낙관을 논할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좌절과 절망의 지난 시대를 답습할 것인지, 도약과 희망의 새 시대를 열 것인지를 판가름할 새 역사의 기로에 서 있다는 비상한 각오가 요구되는 한 해다.

9.11 테러 사태 이후 세계는 급속한 재편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둘러싼 긴박한 열강의 움직임이 가속되고 유럽 12개국은 단일통화 체제로 새로운 통합 모델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일본의 군사 대국화와 중국의 경제 대국화로 동북아 정세도 회오리를 예고하고 있다. 세계 질서 또한 분열과 통합이라는 새 틀 짜기, 짝짓기에 들어서는 격동의 한 해가 될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전국민 통합을 요구하는 월드컵 축제를 치러야 하고 지역 갈등과 이데올로기의 반목을 첨예하게 불러올 수밖에 없는 지방선거와 대선으로 질풍노도의 한 해를 보내야만 한다.

새해 벽두부터 시작될 대선 후보들의 각축전과 여기에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혼전,이를 둘러싼 여야의 앞뒤 가리지 않을 음모와 흑색 폭로전으로 과연 세계인의 축제가 제대로 치러질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또 세계인의 축제를 통한 통합과 단합으로 제2의 도약을 다짐해야 할 시점에서 분열과 갈등이 극명하게 노정(露呈)될 이 한 해의 문제를 어떻게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인가에 우리 국민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민족적 통합이 절실한 시점에서 잠재된 분열과 반목이 증폭돼 폭발하리라 예상되는 올 한 해를 맞으면서 중앙일보는 다음과 같은 다짐과 주장을 독자 여러분에게 하고자 한다.

첫째, 중앙일보는 갈등과 반목을 어느 한쪽에 서서 편들거나 조장하는 언론이 아니라 갈등과 분열을 잠재우고 화해와 융합으로 이끄는 중재자, 통합자인 유니파이어 역할을 자임하고자 한다. 대선 전초전으로서의 지방선거와 정권 창출을 둘러싼 대통령 선거전은 사상 유례없는 지역감정과 보혁 갈등을 들쑤셔 놓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후보자들 중심으로 학연과 지연의 줄 서기와 편 가르기가 시작되고 어느 편에 섰느냐에 따라 주의.주장이 달라지는 이런 식의 분열을 우리는 배격할 것이다.

지역 갈등을 조장하거나 사회 통합을 해치는 정치인이나 정치적 행태에 대해선 엄중한 비판을 할 것이다. 실사구시적 관점과 글로벌 잣대에 따라 사리 분별을 따져 시시비비를 가리면서 사회 분열이 아닌 통합의 기능을 맡는 데 우리는 노력할 것이다.

둘째, 갈등과 반목의 정치가 3金식 정치 유산이라는 점에서 3金정치의 청산 극복이야말로 우리 정치의 진정한 민주화를 달성하는 과정이다. 마찬가지로 언론 또한 지금껏 익숙했던 3金식 언론 풍토에서 벗어나야 거듭나는 언론의 위상 정립이 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는 3金식 언론 행태에서 과감히 탈피해 새로운 형태의 일류신문으로서 진면목을 보이고자 한다.

무엇이 3金시대의 언론 행태인가. 한마디로 정치 과잉의 단순 과격형 비판 자세다. 정치 일색의 대안없는 단순 일변도 언론이다.

새로운 세기, 새 지도자를 뽑는 시점에서 이런 단순 과격형 정치언론이야말로 지역감정과 이념 갈등을 증폭시키는 구태의연한 언론 제작방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벗어나 정책으로 후보를 판단하고 제왕적 지도자가 아닌 기업 경영자 같은 전문성과 지도력을 가려낼 여러 시도를 하고자 한다.

이미 중앙일보는 지난해 창간 기념호에서 밝혔듯 '국가 과제 만들기(내셔널 어젠다)' 기획을 선언했고 우리의 잣대를 마련해 후보들을 점검하고 그들의 정책을 따져보는 나름의 기준을 마련했다.

이 기준과 잣대에 따라 후보들의 지도력과 정책을 평가하고 점검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보도와 논평을 할 것이다. 막연한 공약을 남발하거나 좋은 간판이면 무엇이든 가져다 붙이는 정치인들의 허위 의식을 벗기면서 우리가 지향할 국가 목표와 지혜를 어떤 지도자가 갖췄는지를 제대로 따져보는 실험대가 될 것이다.

끝으로, 지난 한 해 우리 언론은 진정 껍질이 깨어지는 아픔을 겪고 새로운 자세와 모습으로 국민 앞에 나타나야 할 시대적 과제를 안게 됐다고 판단한다. 권력에 의한 탄압도 받았지만 우리 언론 스스로 권력화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성찰의 한 해이기도 했다.

이제 언론은 군림하는 언론이 아니라 독자와 함께 호흡하고 국민과 함께 시대적 과제를 풀어가야 할 새로운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다짐한다. 통합과 화해로 우리의 민족 역량을 제고하며 월드컵을 통해 국가 번영의 재도약을 시도할 견인차 역할을 자임해야 할 것이다.

낡은 정치의 틀을 깨고 언론 스스로 새로운 각오와 변신의 노력으로 3金시대의 구각에서 탈피해 새로운 형태의 일류 언론의 진면목을 제시코자 진력할 것임을 독자 여러분에게 거듭 약속드린다.

근하신년(謹賀新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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