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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 겹실패… 아르헨 위기 불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대통령이 국민에게 준 가장 훌륭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아르헨티나의 도밍고 카바요(54)경제장관에 이은 페르난도 데 라 루아(64)대통령의 사임에 대한 시민들의 이같은 반응은 지난 2년간 그의 정치력 부재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대통령의 사임으로 소요사태는 진정국면에 들어설 것이나 실정(失政)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정치불신의 골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결단력이 부족한 대통령이 경제위기 수습을 카바요 장관에게만 일임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국민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다. 데 라 루아는 1999년 중도좌익 연립정당의 대표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코르도바대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 출신으로, 96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초대 민선시장을 지낸 그는 부정부패로 얼룩진 전임 카를로스 메넴 정권에 대한 반대여론에 힘입어 어렵지 않게 당선됐다.

그러나 그는 청렴하다는 인상 외에 이렇다 할 국가경영전략을 제시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10년간 집권하면서 남발한 선심성 정책으로 텅빈 국고를 메넴 정권으로부터 넘겨받은 것이 치명적이었다. 집권 얼마 뒤에 터진 구제역 파동으로 쇠고기 수출이 타격을 받으면서 달러벌이는 더욱 어려워졌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4백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던 것이다.

가장 큰 골칫덩이였던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지난 3월 메넴 정권에서 경제장관을 지냈던 카바요를 다시 기용했다. 카바요는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까지 지낸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였다. 91년 1페소=1달러의 고정환율제(페그제)를 도입, 연 5천%에 달했던 인플레를 잡았던 주인공이다.

그러나 카바요 카드는 이번엔 먹혀들지 않았다.페그제를 도입할 당시엔 국영기업을 팔아 외화를 유치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내다팔 기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고정환율제 시행으로 수출가가 너무 높아져 수출은 안되고 수입은 늘어 무역적자가 확대됐다.

자연히 외채는 늘어갔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임금.연금 삭감 등 초긴축 재정정책을 취했다. 국민의 생활고는 더욱 심해졌고 폭동까지 일어나 정권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앞으로 정권은 야당인 페론당이 다시 잡을 것이 확실시된다. 페론당은 이미 지난 10월 총선에서 상.하원 모두를 장악했다. 이들은 앞으로 페소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쪽으로 경제회생책을 도모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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