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에세이] 강정구 교수를 위한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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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올해 초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로버트 브레너(UCLA)교수는 미국의 대표적인 좌파 학자 중 한명이다. 기존의 자본주의 이행론과 달리 자본주의의 등장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다고 설명해 세계적인 경제사학자가 된 인물이다. 영주와 농노 모두 계급투쟁을 통해 몰락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본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게 그 내용이다.

그는 고급 벤츠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좌파는 빈곤해야 한다는 식의 '편견'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에 대한 학교의 융숭한 '대접'을 알리기 위해서다. 요즘의 분위기에서 수강생도 그리 많지 않은 그를 대학은 매우 중요한 학자로 대우한다. 그에게 이런 처우에 대해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대학은 이념이 아니라 이론적 성과를 평가한다."

몇달 전 북한을 방문해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자'는 글을 써 문제가 되었던 강정구(동국대.사회학)교수를 최근 대학측이 징계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학계에서도 당시의 표현이 적절치 않았다는 의견이 제기됐지만, 그의 학문적 진지함과 성과에 대한 평가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북한의 토지개혁을 연구해 학위를 받은 그의 이론적 입장은 '역사추상형 모델'이다. 이 모델은 외부의 영향을 배제하는 대신 내부의 동력에 주목해 한국 근대사를 이해하자는 것이다. 이런 모델에 따라 그가 주목한 것은 민족해방운동의 민족적 정통성이며, 이런 입장 때문에 학계에서는 그를 '급진적 민족주의자'로 평가한다.

'만경대…'운운도 이런 맥락에서 거부감 없이 나올 수 있었고,"'만약 지리산에 갔다면, 지리산의 정신을 이어받자'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그의 말도 같은 뜻일 것이다.

문제는 대학이 강교수를 학계의 평가에 맡기지 않고 냉전시대와 다름없이 이데올로기로 직접 제재를 가하려는데 있다.

오늘날 지성의 시대정신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노엄 촘스키가 『냉전과 대학』에서 설명한 것처럼 차이를 용인하지 않는 냉전시대에 차이는 곧 적(敵)이었고 차이에 대한 투쟁은 정의였다. 그러나 에마뉘엘 레비나스 등 많은 철학자의 주장처럼 타자를 인정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관용', 즉 톨레랑스가 오늘날의 시대정신으로 바뀐 지 오래다.

그럼에도 지성을 대표하는 대학이, '이념이 아니라 이론으로 평가하자'고 나서서 그를 보호해야 할 대학이 오히려 이데올로기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자신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아이러니일 뿐이다.

요즘 강교수는 자신의 의도와 달리 그를 '투사'로 만들고 있는 주변 때문에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의 석방을 환영하는 모임에서도 강교수를 '만경대 교수라고 부르자'며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이 또한 스스로를 외부와 단절시킨 신념이 자칫 도그마로 빠져드는 과거의 경험을 다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를 징계하려는 대학이나 그를 '투사'로 만들려는 주변 모두 이제 우리의 지적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그를 학자로 대접하고 그의 학문적 성과로 평가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김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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