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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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재정위기가 제2의 금융위기로 번진다고 해도 한국 경제는 위기대처 능력을 키워온 만큼 2008년처럼 당하진 않을 것이다.”

신현송(사진)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은 23일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국제금융시장에서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때와 비슷한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와 자금 회수)이 진행 중이지만 한국 경제는 큰 어려움 없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2008년과 비교하면 산불이 다 탄 다음에 새싹이 나왔는데 산불이 다시 번진 것으로, 이번엔 한국 경제의 외환부문 취약성이 크게 개선돼 (산불에) 탈 것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이어 “외부로부터 과잉 유동성이 들어오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며 “유럽 위기가 잠잠해지면 은행의 선물환 거래를 규제하기로 정부 내 합의가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출신인 신 보좌관은 국제경제 현안과 11월 주요 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를 다루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는 어떤 상태인가.

“유럽 몇몇 국가들의 국채 문제에서 글로벌 유동성 위기로 번지고 있다. 미국 서브프라임 때와 비슷한 양상이다. 금융회사들이 자금을 회수하면서 달러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디레버리징은 성격상 확산되는 성향이 있어 그냥 흐지부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산불이 다 타야 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럽은 아직 (불에 탈) 연료가 많이 남아 있다. 유럽계 은행들과 글로벌 금융시장은 모두 연결돼 있어 미국 월가의 은행들도 타격을 입고 있다. 달러를 쓴 금융회사들은 모두 영향을 받게 된다.”

-유럽의 위기인데 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나.

“유럽계 은행들의 달러 자금조달이 굉장히 많았다. 미국 연방준비은행(FED)과 거래하는 지정기관 18곳 중 7곳이 유럽계 은행이다. 제로에 가까운 금리로 달러를 빌려 전 세계에 투자했다. 한국도 그 대상이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초저금리 정책이 전 세계에 불러온 과잉유동성과 시장 왜곡이 이번 사태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제2의 금융위기로 번지게 될까.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현 상황을 서브프라임 사태와 비교한다면.

“서브프라임 때보다는 지금이 펀더멘털의 부실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때는 중앙은행들이 개입해 시중에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었다. 재정지출도 확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과 유럽이 추가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쓸 여지가 별로 없다. 그래서 서브프라임 때처럼 문제가 커질 우려가 있다.”

-한국 경제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텐데.

“서브프라임 사태 때는 국내 금융회사들의 외환부문이 취약해 자금 경색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 경제의 외환부문 취약성이 많이 개선됐다. 2008년과 달리 금융회사에 대한 외화유동성 규제가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되고 있고, 조선업계의 선물환 매도 규모도 적다. 중소기업들의 키코 문제도 없다. 위기가 커진다 해도 잘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국내 금융시장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최근 원화가치 급락은 저금리로 빌려서 국내에 들여왔던 외국계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자본이 많이 유입됐던 곳들이 모두 충격을 받고 있다. 호주가 좋은 예다. 호주달러 가치는 이달 들어 미국 달러화 대비 10% 이상 내렸다. 호주가 지난해 가을부터 금리를 올리자 유입됐던 외국계 자금이 대거 빠지고 있다.”

-한국 경제의 그런 취약성을 보강할 방법은 .

“외국계 자금의 과잉유입이 문제다. 과잉유입은 몇 가지 큰 문제를 낳는다. 첫째 시장가격을 왜곡한다. 부동산 시장을 과열시키고, 과도한 인수합병(M&A)을 야기하는 것이 그런 예다. 이번처럼 글로벌 유동성 위기 때 국내 경제를 취약하게 만든다. 과잉유입됐던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과도한 자본 유출입 문제는 통화정책의 자주성을 되찾기 위해서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자본 유출입이 지나치면 통화정책을 제대로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 위기 전부터 과잉 자본유입을 억제하는 장치로 은행의 선물환 거래 규제책을 준비해 왔다.”

-선물환 거래 규제는 언제부터 시행하나.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 정부 내에서 도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통화정책의 자주권을 확보하고 유동성 위기에 취약한 경제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선물환 규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유럽 위기가 커지면서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고 도입하기로 했다. 위기가 잠잠해지면 시행할 것이다. 지금 진행되는 유동성 위기는 그 자체로 국내의 과잉유동성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 한국은행 입장에서도 출구전략 시행에 대한 압박감이 상당히 해소될 것이다.”

-언제 금리를 인상해야 하나.

“ 언젠가는 금리를 올려야 할 시기가 올 텐데, 그때 금리인상으로 유동성을 잡기 위해선 그 전제조건 중 하나가 과도한 자본유입을 억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미국이 제로금리에 가까운데 우리만 금리를 올리면 자본유입이 더 늘어날 수 있다. 국내 거시정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과도한 외자유입의 영향을 줄여야 한다.”

-G20에서 논의되고 있는 은행세는 어떻게 되나.

“ 은행세 도입을 찬성하는 나라도 있고, 반대하는 나라도 있는데, 각국 사정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고서가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합의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은행세에 대한 한국의 공식의견은.

“긍정적인 입장이다. 다만 우리가 의장국이어서 공식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할 수 없다.”

글=이상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신현송(50)=국제금융시장 전문가.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로 재직하다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으로 기용됐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 교수와 런던정경대(LSE) 교수를 거쳤다. 통화정책에 대한 그의 논문은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이 인용할 정도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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