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멋, 단독주택에 접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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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비어 있는 마당에 소복이 쌓인 눈, 채와 채가 떨어져 서로를 바라보는 공간감, 그 사이에 깃들인 고요함. 이런 것들이 일상 속에 생각하는 순간들을 보태 삶의 질을 높여준다."

김영섭 건축문화연구소장이 묘사하는 한옥의 특성이다.

金소장은 "한옥의 맛과 아름다움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두 방향에서 한옥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다"고 밝힌다.

우선 스스로 서울 계동의 한옥을 개조해 살면서 노후한 한옥을 수리해 살만한 집으로 재탄생시키고, 또 다른 방법으로는 새로 설계하는 주택을 한옥이 가진 공간감을 살리는 방향으로 디자인한다는 것.

검은 기와를 쓰거나 한옥식 문 등을 사용하는 방식의 장식적 의미의 한옥살리기가 아니다. 한옥의 공간 구성이 가진 특징을 주택 설계에 도입한다는 설명이다.

그가 살고 있는 계동의 집(두채를 연결함, 그는 능소헌과 청송재로 부름)은 전형적인 서울의 도시형 한옥. ㅁ자형이며 안방.대청.건넌방.문간방으로 구성됐다. 부엌과 화장실.난방 방식 등은 현대식으로 개조했지만 나머지 부분은 그대로 살렸다.

도시형 한옥은 1930년대에서 60년대에 이르는 시기 서울에 집단적으로 형성됐다.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송인호 교수는 "전통적인 한옥이 근대적인 도시 주거지 속에서 진화된 독특한 도시형 주택의 한 유형"이라고 설명한다.

서울 가회동.계동은 이런 도시형 한옥이 많이 남아 있어 한옥 보존지구로 지정됐지만 최근 서울시가 규제를 완화하면서 점차 그 수가 줄고 있다.

金소장은 "한옥에 살다보면 한 템포 늦어지게 마련"이라면서 '느슨한 일상이 가져다주는 삶의 느긋함'이 한옥이라는 공간과 형태가 가져다 주는 맛이라고 밝힌다.

이와 별도로 이달 초 金소장이 설계해 서울 우면동에 완공한 조각가 K씨의 주택은 현대적인 재료와 디자인을 통해 한옥이 가진 공간감을 살려낸 예다.

우선 주택을 길에 면해 지어 집의 경계가 대지의 경계이고 담이기도 했던 서울의 도시형 한옥 분위기를 살려내고 있다. 방의 창을 열고 골목길의 이웃과 대화할 수 있는 지난 시대의 동네 분위기를 살려내는 주택인 셈이다. 가운데가 비어 있는 마당을 중심으로 해 주거 공간이 둘러싸게 한 것도 한옥의 공간감을 계승한 것이다. 좁게 남겨진 뒷마당은 장독대가 들어서면 그대로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주변 녹지 경관이 빼어난 우면동의 바깥 경치를 집안에 끌어들이는데도 한옥의 방법을 차용했다. 수평으로 긴 창을 통해 보이는 경치는 그대로 액자에 걸린 그림처럼 보이도록 배려했다.

그러기 위해 창이나 문의 장식도 최소화하고 단순한 한옥의 조형미를 본떠 주택 외관도 단순하게 디자인했다. 주택의 모습만 보면 언뜻 모더니즘 계열의 디자인과 차별화되지 않을 정도다.

노출 콘크리트 재료를 사용한 현대적 외관이지만 공간의 구성을 통해 한옥이 가진 맛을 재현해내는 것도 한옥 살리기의 한 방법이라는 것이 金소장의 주장이다.

그는 "우면동 주택의 경우 재료도 비교적 저렴한 것을 선택해 단독주택이 부유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도 말하면서 전통적인 공간 구성을 가진 주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계동에 위치해 70년이란 세월을 지닌 전통 도시형 한옥인 능소헌, 청송재와 개발제한구역 내 단독주택 단지에 위치한 현대 주택인 우면동 주택은 전혀 다른 맥락에 놓여 있음에도 골목길에 면한 모습, 방으로 둘러싸여 가운데에 마당을 배치하는 기법 등을 통해 비슷한 느낌을 공유하고있다.

신혜경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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