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이상룡·최재형에게 배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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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호 34면

“임진왜란 때 선조는 도망치기에만 바빴지요. 압록강을 건너 요동으로 갈 생각만 했어요. 임금이 도성을 떠나자 어떤 일이 벌어진 지 알아요? 난민들이 도성에 불을 질렀는데 그게 장예원과 형조였어요. 둘 다 노비 문서가 있는 곳이었다고 해요. 당시 민심을 알 수 있지요. 심지어 적병 사이에 우리나라 사람이 섞여 있다는 얘기까지 있었어요.”

송상훈 칼럼

올봄 아직 찬 기운이 여전할 때 저녁식사 자리에서 만난 역사학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거침없이 선조를 공격했다. 이 소장은 중앙SUNDAY에 매주 기고를 한다. 선조에 관한 이야기를 본지에 쓴 적이 있지만 한번 시작된 이야기는 그칠 줄 몰랐다.

“임진왜란의 전세가 바뀐 게 언젠지 아시지요. 의병이 일어나면서 아닙니까. 그럼 그전에 도성에 불을 지르고 왕조에 등을 돌렸던 사람들이 왜 의병에 들어가 싸웠을까요. 바로 면천을 해 준다는 법 때문이었어요.”

영의정이던 류성룡이 만든 면천법(免賤法) 얘기였다. 베어 오는 적의 머릿수에 따라 면천도 시켜 주고, 벼슬까지 주는 내용이었다. 면천법에 따라 수문장 같은 벼슬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기록도 있다.

의병 활동이 활발했던 다른 배경 중 하나는 바로 사대부의 희생이었다. 의병 가담자는 농민을 비롯한 일반 백성이었다. 그러나 의병을 일으키고 지휘한 것은 전직 관료와 사림, 승려들이었다. 그들은 사재를 털어 의병들을 먹이고 입히고 무장시켰다. 임란 후 첫 번째로 의병을 일으킨 경남 의령의 곽재우도 유생이었다. 그가 이끈 의병만 2000명이었다고 하니 요즘으로 치면 연대 병력의 살림을 책임진 것이다. 난국을 극복하기 위한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의병 활동을 위한 지도층의 희생은 경술국치 이후에도 활발했다.
독립군 사관학교인 만주 신흥무관학교의 설립 주역인 이시영(1868~1953)과 이상룡(1858~1932).

이시영은 백사 이항복의 10대 후손이다. 17세에 과거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한성재판소장을 지내다 한일병탄이 되던 해 만주로 망명한다. 망명길에는 6형제가 함께 나섰다. 형제들은 서울을 떠나며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처분했다. 요즘 가치로 따져 1000억원쯤 됐다는 설이 있다. 그 돈 대부분이 만주 신흥무관학교로 들어갔다. 그는 훗날 임시정부의 법무총장을 지냈고, 광복 후 귀국해 부통령을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경북 안동의 명문가 출신인 그는 국내에서 의병운동을 하다 1911년 가족과 함께 만주로 간다. 이주 전에 그는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가산을 모두 정리한다. 이시영과 함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초대 교장을 맡았다.

두 사람이 세운 신흥무관학교는 독립운동 비밀결사단체인 의열단원의 주요 공급처였다. 청산리 전투의 신화를 이룬 김좌진 장군도 이곳 출신이다.

최재형(1859~1920)은 함경도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러시아인의 도움으로 서구식 교육을 받고 군수공장을 해 자수성가했다. 연해주 지역 의병을 최신 무기로 무장시키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그래서 러시아 지역의 독립운동 대부로 불린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것을 지원하고, 안 의사가 처형된 뒤 그의 가족을 보호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재산과 안위를 과감하게 던지는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더욱 빛을 발한다. 그들은 분열된 국민을 하나로 묶어 준다. 자칫 포기하기 쉬운 국가관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정부는 최근 곽재우가 의병을 일으킨 6월 1일을 ‘의병의 날’로 정했다. 의병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애국·애족정신을 전승하도록 국가기념일로 정했다고 한다. 우리가 의병이나 당시 지도층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애국심만이 아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다.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정부 발표 이후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담화문에서 구체적인 대북 제재 내용을 밝히면 긴장의 강도는 높아질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임진왜란과 경술병탄 때 일어났던 의병 정신이다. 그리고 지도층의 봉사하고 희생하는 자세다. 가진 것, 그것이 미움이나 원망 같은 것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나누자. 갈등과 분열, 혼란을 줄이려 애쓰는 사람을 칭찬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겠다. 예컨대 쌍끌이어선으로 서해 바닥을 박박 긁다시피 해 어뢰 스크루를 끌어올린 대평 11호 김남식 선장과 선원에게 훈장을 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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