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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인터뷰] 54년차 현역, 영원한 연기자 이순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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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권위주의적 아버지(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표상이었다. 지금은 ‘야동’(야한 동영상) 보고 방귀 소리 뿡뿡 내는 소시민 할아버지(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지붕뚫고 하이킥’)의 대변자다. 76세 현역 배우 이순재. 냉·온탕을 오가는 캐릭터 변신의 귀재이자 몹쓸 세태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방송가의 큰어른이다. 지난 7일 그가 겸임교수로 지도하는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연습실을 찾아갔을 때, 쩌렁쩌렁한 목청이 울렸다. “거기선 질러버리라고. ‘대~단해요’ 이렇게!” 50년 차이 나는 학생들 틈에서 눌리지 않는 기(氣)가 공기를 흔들었다.

글=강혜란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 노인 위한 특별대우는 없다

● 기부드라마 ‘사랑의 기적’에 동참하셨더라고요.

“운군일 PD가 은퇴하면서 좋은 일 한다기에, 같이 힘 보탰지 뭐(※기부문화를 위해 제작된 SBS ‘사랑의 기적’은 제작·출연진이 모두 무보수로 기여했다). 지금은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막바지 촬영 중이야. 만화 원작인데, 노인들 사랑 얘기야. 요즘 혼자 된 노인이 많아 문제야. 지금은 65세라도 한창이잖아. 감성은 그대론데 활동할 데가 없으니 원.”

● ‘지붕킥’ 도 그렇고, ‘엄마가 뿔났다’에서도 노년의 사랑을 보여주셨죠.

“내가 우리 구(서울 중랑) 사회복지협의회장을 맡고 있는데, 오늘 복지회관 행사에서 한마디 하라기에 노인네들한테 ‘서로 사귀기도 하고 활기차게 사시라’고 했어. 며느리 눈치 보고 골방에 있으면 뭘 해. 좋은 시대에 새로운 것도 많은데. ‘야동’도 볼 수 있으면 보라고(웃음).”

영락 없이 ‘야동순재’의 짓궂은 눈웃음이다. 이 눈빛이 바로 다음 작품 ‘이산’에선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영조의 회한을 내뿜었다. 두 캐릭터엔 공통점이 없지만 두 작품의 PD들은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연기자 선정 때 이순재씨를 가장 먼저 캐스팅했다”는 것이다. “어르신 연기자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촬영장 분위기가 확 바뀌거든요. 이 선생님은 정말 모범적인 연기자시니까요.”(‘거침없이 하이킥’ 김병욱 PD) 이 말을 전하자 퉁명스레 받았다. “촬영장에선 다 똑같은 배우인데, 뭘 대접받으려고 해. 어떤 사람들은 ‘내 것부터 찍자’ ‘밤샘 싫다’ 이러는데, 그런 걸 보면 젊은 사람들이 뭘 배우겠어. 작든 크든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지.”

# 요즘 젊은 연기자들, 영혼이 없어

54년차 현역 배우인 그는 신구·최불암 등과 함께 1세대 연기자에 속한다. 지난해 백상예술대상 공로상을 탔을 때 수상 소감은 지금도 회자된다. “감사합니다. 2010년엔 남자 최우수 연기상에 도전하겠습니다.”

● 그 수상 소감은 어떤 뜻이었나요.

“말 그대로야. 나이 들면 죄다 공로만 들먹이지, 능력으로 보려고 하지 않아. 비단 나뿐만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도 평가를 해달라는 이야기야. 젊은 애들에게 상 주는 건 좋은데, 능력껏 평가를 해야지.”

● 요즘 젊은 연기자들 보면 어떠세요.

“요즘 아이들, 영민하고 감수성도 뛰어나지. 용모와 체격도 월등히 좋고. 그런데 안면이 굳어 있어. 감수성이 안 느껴져. 노래하고 모델 서던 애들을 두 달 연습시키고 드라마로 보내니, 그럴 수밖에. 당장은 인기 끌지 몰라도, 평생 가겠어? 애들을 소모품처럼 써버리는 방송사들이 문제야.”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요즘 드라마 보면 연기에 영혼이 없어. 우리 TBC 시절엔 안 그랬어. 언론 통폐합으로 사라지긴 했어도, 작품성·내용이 다 훌륭했어. 신봉승·김수현이 말석이었을 때지. 작가들이 3고, 4고를 쓰며 자존심을 걸 때야. 지금처럼 쪽대본으로 찍어대서 될 일 아냐. 새로 방송사 만들면 사전 제작부터 확실히 해야 해.”

# 달라진 세태, 부권(父權)은 존중받아야

● 선생님에게서 아직도 ‘대발이 아버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옛날 아버지에 대한 향수지. 잘났든 못났든 수입원이 아버지한테만 집중돼 있던 시절 아냐. 지금은 월급도 온라인으로 다 들어가니 남편 지위가 급전직하라고(웃음). 남편들이 잘 해야 돼. 시대가 변했는데, 뻗대며 살다간 당장 이혼이지.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고, 그분들이 헤쳐온 역경은 존중해드려야지.”

● 아버지로선 어떤 분이세요?

“빵점이지. 애들이 한참 자랄 때 작업 환경이 이럴 때가 아니었거든. 처음 TBC 월급이 2만원이었어. 영화까지 찍으면 한 달에 20일은 밖으로 나돌았어. 애들이 어떻게 크는지도 몰라. 그래서 마누라가 ‘나는 시집 새로 가도 된다. 처녀나 마찬가지야’라고 한다니까.(폭소)”

그는 다시 “애들 봐줘야 된다”며 학과 연습실로 향했다. 워크숍 작품인 ‘바냐 아저씨’ 대본을 펼쳐 안경 너머로 뚫어지게 봤다. 문장마다 장단음과 동선이 빽빽하게 표시돼 있다.

“요즘 연출가·작가들은 주관이 부족해. 찍어내기 바빠. 막장 드라마 같은 거 보면 한심해. 나는 대본이 말이 안 되면 따지고 물어. 캐릭터가 왜 이러냐, 이 장면은 왜 이러냐.”

● 막장 드라마에서도 출연 제의 온 적 있나요?

“그게 그런 데선 오란 소리가 없더라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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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탤런트

19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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