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단체장 후보 24시 르포 ① 서울시장 후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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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지방선거 열사흘. 6·2 지방선거에서 후보들이 공식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이다. 역대 선거와 비교하면 짧다. 반면 변수는 메가톤급들이다. 천안함 침몰 사건의 조사 결과가 ‘북한’으로 지목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23일)가 겹쳐졌다. 야권의 후보 단일화 바람이 일었고, 정부·여당이 깔아놓은 ‘세종시’ ‘4대 강 사업’이란 지뢰도 선거판에 버티고 있다. 각급 선거에 3991명이나 뽑는 선거지만 승패를 가르는 제1 기준은 16곳 광역단체장 후보들의 전투다. 후보들은 그래서 괴롭고 조급하다. 그들의 승부 호흡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기로 한 이유다. 첫 순서는 서울시장 후보들이다.

조계사 … 가락시장 … 배추 나르고 사인하고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 30분 단위로 촘촘한 일정

오세훈 후보가 21일 증미역 유세에서 유권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김형수 기자]

본디 선거는 공격하는 쪽보다 방어하는 쪽이 힘들다. 그래서일까. 첫 민선 서울시장 재선에 도전하고 있는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는 4년 전보다 훨씬 신중했다.

공식 선거운동이 막 시작된 20일 0시.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첫 선거운동 장소로 택한 오 후보는 몰려든 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운동원들에게 이렇게 신신당부했다. “조용히 돌아요. 일하시는 데 방해되면 안 돼요. 너무 많이 몰려다니면 오히려 상인분들이 반감을 가지실 수 있어요….”

청과시장 안에 들어가 리어커에서 상인들과 함께 배추를 운반하던 오 후보가 “이렇게 올리면 되죠”라고 하자, 50대 남자 상인은 “여기다 놔, 여기다 놔” 대뜸 반말이다. 오 후보가 겸연쩍게 웃었다. 1시간 가까이 시장을 돈 오 후보가 몰려든 인파들을 향해 목소릴 높였다.

“첫 행선지로 이곳을 택한 이유가 있다. 천만 시민의 식단을 위해 하루를 여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과거 회귀세력과 미래세력의 대결이다. 앞으로 2주간 뼈가 으스러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오늘의 출정식이 6월 2일 압승으로 이어지게 하겠다.”

21일 오전 11시14분 서울 견지동 조계사 마당.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마친 수많은 불자들이 오 후보를 둘러쌌다. 60대 남성이 하얀 종이를 건네며 “사인 좀 해달라”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수첩과 종이를 들이밀며 뒤엉키기 시작했다. 20명 넘게 사인을 해주고도 사람들이 끊이지 않자 수행원들이 양해를 구했다. 인파 속에서 빠져 나온 오 후보의 하늘색 와이셔츠 깃에 립스틱인 듯 빨간색 흔적이 남았다. 바지엔 군데군데 흙이 묻었다. 오 후보의 얼굴이 잔뜩 상기돼 있었다.

4년 전만 해도 그는 ‘신인’으로 여겨졌다. 이른바 오세훈 선거법 등 개혁적인 정치인에다, 방송 진행과 정수기 광고 등으로 얻은 깨끗한 이미지가 높은 대중 지지도를 얻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실적에 대한 평가에 ‘4년 더’를 유권자들에게 설득시킬 뭔가가 더 필요해졌다.

오후 3시5분 등촌동 증미역으로 자리를 옮긴 오 후보는 정장 바지에 하늘색 와이셔츠 차림으로 유세차에 올랐다. “강서구는 제가 시장을 하면서 많이 발전됐다. 앞으로 4년간 서울을 동북아의 허브로 만들고 그 시작이 강서구가 될 것이다.”

오 후보의 유세 포인트는 재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책의 연속성’이었다. 맞상대인 한명숙 후보와 야당에 대한 공세도 빠뜨리지 않았다. 매번 유세차에 오를 때마다 “한명숙·유시민·김두관·이광재·안희정, 이런 사람들 이름을 들으면 여러분 뭐가 생각나세요?”라고 물었다. 그러곤 “부패하고 무능하고 나라 살림을 거덜 냈던 과거 실패 세력들이 야당의 옷을 입고 부활을 꿈꾸고 있다”고 스스로 답했다. 30분 단위로 짜여진 촘촘한 유세 일정 중간에 짧은 문답을 나눴다.

-4년 전과 비교하면 어떤가

“책임이 더 무거워졌다. 하지만 좀 더 힘이 넘친다.”

-여론조사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일 잘하는 젊은 시장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묵묵히 4년 동안 일한 게 지지받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글=허진 기자 , 사진=김형수 기자

봉은사 … 야구장 … 노인들 밥 푸고 춤추고
민주당 한명숙 후보 차에서 쪽잠 자며 강행군

한명숙 후보가 21일 잠실야구장 앞 유세에서 율동을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

21일 오후 7시10분 서울 광진구 강변역. 민주당 한명숙 후보는 “우리는 이명박 정부에 권력을 몰아줬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됐습니까…”라고 외치다 김유정 의원이 건네준 음료수로 목을 축였다. 그런 다음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빚을 내 토목공사를 해도 되겠습니까. 누구를 믿고 자식을 군대에 보내겠습니까. 오늘 7군데를 다녔는데 바꿔야 한다는 민심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이어 유세곡인 ‘굳세어라 금순아’가 나오자 한 후보는 가락에 맞춰 춤을 췄다. 손가락으로 기호 2번을 상징하는 ‘V자’를 만들며 팔을 하늘로 힘껏 찌르기도 했다.

한 후보는 국회의원을 두 번 했고, 여성부·환경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각종 경선을 치르고 선거 지원 유세를 하면서 선거에 익숙하다”고 말하지만 자신을 위한 거리 유세는 2008년 경기도 일산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나온 이후론 처음이다. 당시 그는 낙선했었다.

한 후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그러나 부처님 오신날인 21일만큼은 불자였다. 그는 사찰 세 곳을 찾아 수없이 합장을 했다. 옷도 스님들 사리 색깔과 비슷한 상아색 정장을 골랐다고 김현 부대변인은 귀띔했다. 오전 종로 조계사에서 50대 여성에게서 받은 녹색 염주(단주)를 손목에 걸고 이날 유세를 했다. “다음 일정 때문에 빨리 이동하자”는 수행원을 “잠깐만”이라고 만류한 다음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시민들의 손을 잡는 그의 모습은 여러 번 목격됐다.

오후 2시50분 강남 봉은사. 한 후보는 한나라당 안상수 전 원내대표의 ‘봉은사 개입 의혹’을 제기했던 명진 스님과 마주 앉았다. 갑작스레 방문 의사를 밝혔는데도 명진 스님이 흔쾌히 응했다고 했다.

명진 스님이 “4대 강은 뭇 생명을 짓밟아도 된다는 건데 재앙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이명박 정부의) 무한질주를 막아야 하는데 한 후보가 해결해 달라”고 하자 한 후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앞서 오전 11시30분 한 후보는 서울 노인복지센터를 찾았다. 그는 “저도 노인입니다. 같은 마음으로 잘 모시겠습니다”며 점심 식판을 부지런히 날랐다. 오후에는 잠실야구장 등 곳곳을 찾아 다니며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서울시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전날에도 강행군을 했다. 0시 정각부터 밤까지 검정 등산 바지에 회색 운동화 차림으로 동대문·명동·신촌을 누볐다. 곳곳에서 후보 단일화를 이룬 민노당·국민참여당 인사가 가세하면서 연두색 민주당 점퍼와 주황색 민노당 점퍼, 노란색 참여당 점퍼가 뒤섞였다. 한 후보는 유세장에서 “나는 범야권 세력의 단일 후보다. 그런데 져서야 되겠는가”라고 외치며 지지층을 결집시키려 했다.

여론조사에선 아직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그를 앞서고 있다. 그런 한 후보에게 ‘어떻게 할 건가’라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현장에서 느끼는 민심은 다르다. 내가 역전할 거다.”

그에게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차에서 쪽잠을 잔다. 악수도 한 손보다 두 손으로 하면 힘이 덜 든다”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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