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소 '급행료 비리' 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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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직원들이 등기 신청 등의 민원 업무를 빨리 처리해 주는 대가로 민원인들에게서 '급행료'를 받는 금품 수수 관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대법원은 28일 "최근 대검찰청으로부터 등기 업무 과정에서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900여만원을 챙긴 수도권 20여개 등기소 직원 40여명에 대한 자료를 받아 감찰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 배종을 감사담당관은 "사실로 확인될 경우 해당 공무원들을 다음달 중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엄중하게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급행료 관행은 민원인들의 경제적 부담으로 직결되는 데다 뒷돈을 주지 않는 민원인들의 업무 처리가 뒤로 밀리는 등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급행료 받기 실태=이번에 적발된 40명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9월까지 소유권 이전 등기를 신청한 법무사들로부터 건당 3만~2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실은 판교 신도시 인근 임야를 구입한 뒤 투자자들에게 비싼 값에 되판 혐의로 토지브로커 13명이 검찰에 구속되면서 드러났다.

이번에 적발된 40명은 전체 급행료 비리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 이번 수사 과정에서 2001년부터 3년간 수도권지역 등기소 및 법원 등기과 직원들에게 5000여만원을 건넸다는 브로커들의 장부가 나오기도 했다.

등기 신청 외에도 민원인이 사건 기록을 복사해 달라고 요청하거나, 채무자의 재산에 대해 가압류를 집행할 때에도 급행료를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법무사 K씨는 "등기 신청을 하면 보통 하루 정도 걸리는데 건당 3만~5만원을 법원 직원에게 슬쩍 건네주면 곧바로 등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 변호사 S씨는 "사건기록 복사가 하루면 가능한데 며칠이 지나도록 안 해주는 경우가 흔하다"며 "그때마다 급행료를 줘야 일이 빨리 처리된다"고 털어놓았다.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법원은 '급행료를 받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직원들이 몇만원 정도의 '푼돈'을 받는 것에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어 급행료 문화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법원 자체적으로 '뒷돈 문화'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입장을 보여온 점도 문제로 꼽힌다. 대법원이 최근 국회에 낸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지난 6월 말까지 뇌물죄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법원 일반직 직원은 21명에 불과했으며, 이 중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한건도 없었다.

대한변협 김갑배 법제이사는 "법원 내부 직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급행료 문화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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