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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줄사퇴' 정부 압력 없었다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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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병기 경제부 기자

내년 1월 출범할 통합거래소의 신임 이사장 선임 과정을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누가 증권 시장의 선진화를 주도할 적임자인지를 따지는 자질 논의는 어느새 사라지고 '외압설'만 난무하는 가운데 후보 선정이 백지화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후보를 사퇴한 세 사람은 말이 없고, 외압설의 당사자로 지목된 측도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하니 마치 유령처럼 '보이지 않는 손'이 휘젓고 지나간 형국이다.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 코스닥시장으로 나뉜 증권 시장을 하나로 통합하는 사령탑(이사장)을 누가 맡느냐 하는 문제는 처음부터 중요한 관심사였다.

우여곡절 끝에 교수 등 민간 전문가 7명으로 구성된 이사장 후보 추천위원회에서 3명의 후보를 확정했지만 이들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지난주 줄줄이 사퇴했다.

청와대에서 밀었던 것으로 알려진 한이헌 전 경제수석이 탈락한 데다 공교롭게도 3명의 후보 모두 재정경제부 출신이라는 점이 알려지자 '재경부가 자기 식구들만 챙긴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추천위원들의 천거로 후보에 올랐던 정건용 전 산은 총재는 "이유를 묻지 말라"는 말만 남긴 채 가장 먼저 자진 사퇴했다.

이어 청와대가 후보 재추천을 요구했다는 소문이 나돌자 후보 추천위원인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한씨를 뽑아 달라는 압력을 가한 것은 청와대 쪽이면서 무슨 소리냐"며 반발하고 나섰다.

결국 다시 후보를 뽑기로 하는 선에서 봉합됐지만 이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이 자리에 강한 애착을 보였던 후보들의 급작스러운 줄사퇴가 외부 압력과는 무관하다는 정부의 해명을 누가 믿겠는가.

'청와대와 재경부가 자리 다툼을 하다 자기들이 내세운 인물이 뽑히지 않자 후보 추천을 아예 백지화했다'는 주장(증권거래소 노조)까지 나오는 판이다.

통합거래소는 증권 업계 등 민간이 100% 출자한 순수 민간기구다. 주주총회를 열어 후보 추천위가 올린 후보 중에서 이사장을 뽑도록 정관에 규정돼 있다. 따라서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다. 더욱이 정부는 지금까지 추천과 자율에 의한 공모 시스템을 업적으로 자랑해오지 않았던가.

홍병기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