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바꿔라, PD 열전 ② MBC 예능프로‘무한도전’김태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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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레게머리까지 했을 정도로 패션 스타일도 뚜렷한 ‘무한도전’의 김태호 PD.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재학 시절에도 노랗게 물들인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녔다. [강정현 기자]

MBC 토요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하 ‘무도’)을 둘러싼 반응은 극과 극이다. “할일 없는 것들의 한심한 전파낭비”라는 눈살 찌푸림이 있는가 하면 “MBC 파업 다 참아도 ‘무도’ 결방은 못 참는다”는 소위 ‘무도빠’들이 있다. 어느 드라마 제목마냥 이건 ‘개인의 취향’ 문제다. 장발족과 서태지도 이런 식으로 천대/환영 받지 않았던가. 분명한 것은 ‘무도’가 김연아·에브라(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동료)도 출연하고 싶어하는 트렌디 프로란 사실이다.

이 ‘무도호’의 선봉에 김태호(35) PD가 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단골에다 트위터(@teoinmbc) 팔로워 1만 3784명(18일 정오 현재)을 거느린, CF 요청까지 여러 번 받은(물론 사양했지만) 스타 PD다. MBC 파업으로 7주간 결방한 ‘무도’는 22일 199회, 29일 200회를 방영한다. 2006년 5월 독립 프로그램이 된 이래 만 4년 만이다.

“브랜드도 색깔이 분명하면 선호도가 나뉘잖아요. 아마 ‘국민 예능’이란 마크는 ‘1박2일’(KBS2) 쪽이 더 어울릴 거예요. 우리는 취향·타깃층이 분명하고, 때문에 시청률도 손해를 봐요. 그래도 우리 원칙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겁니다.”

새로운 것은 그 자체가 ‘무도’의 브랜드다. 캐릭터가 뚜렷한 ‘리얼 시트콤 버라이어티’로 시작해, PD의 감정이 이입된 ‘자막 신공’으로 시청자와 소통하고, 벼농사 같은 연중 기획을 아우르며 변화해 왔다. 예능 프로 최초로 캐릭터를 상품화해 부가수익까지 올린다.

‘무도’가 뚫은 길을 따라 우후죽순 생긴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가 이젠 지상파·케이블 통틀어 20~30개에 이른다. ‘무도’가 최근 ‘죄와 길’ ‘예능의 신’ 등 스튜디오 상황극을 시도한 것은 이 때문이다. “죄다 야외 버라이어티를 외치니까 이젠 스튜디오가 새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란다.

“후배 PD들이 제게 ‘형을 넘어서겠다’고 하면서도 ‘형이 다 해서 할 게 없다’고 해요. 고만고만한 리얼 버라이어티에 출연자만 바꿔서 내보내면 뭐가 달라지겠어요. 판을 새로 짜야 새로운 게 가능하죠.”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해도 ‘무도’ 브랜드가 유지되는 것은 유재석·박명수 등 7인의 멤버십 덕분이다. MBC 파업 중에도 멤버들은 매주 모여 레슬링 특집을 준비했다. 연말 뮤지컬 공연에 대비해 강남 연습실을 자비로 대여해서 안무 연습을 한다. 회당 출연료로 계산할 수 없는, ‘무도 로열티’의 결과다.

“우리 멤버들은 창의력이 통통 튀다 못해 출구가 없었으면 미쳐버리지 않았을까 싶은 사람들이에요. 생각하는 걸 다 실험해보고 싶어하죠. 드라마도 찍고 패션모델도 한 게 그 때문이에요. 저도 마찬가지죠. 대중문화 전반에서 소재를 구하고 영향을 줄 수 있는 예능 PD가 체질인 것 같아요.”

18시간씩 촬영한 걸 편집할 땐 현장 기억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면에선 “타고 난 것 같다”고. 난독증이 있어 신문 읽는 데는 6시간씩 걸리지만, 장면·영상은 사진 찍듯 기억한다. (실제로 그는 2년 전 기자와 만났을 때의 옷차림도 기억했다.) 또 다른 노하우는 ‘젊은 피’와의 소통. 방학마다 대학생 크리에이티브 팀이란 이름으로 재기 발랄한 20대를 선발해 프로그램 모니터링과 아이디어 도움을 받는다. 이들 덕분에 축적된 특집 아이템이 수백 개라고 한다.

올해 예정된 장기 프로젝트를 묻자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특집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예능이 하기에 민감한 소재 아니냐”고 묻자 “남들이 안 하니까 재미 있다. 될까 안 될까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탐험하는 게 즐겁다”고 했다. 크게 웃진 않지만 자주 피식 웃는 남자. 그가 빚어내는 재미나는 세상에 열광하든가 냉소하든가, 선택은 자유다.

글=강혜란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내 인생의 B컷=2008년 8월 2일 방송된 ‘무한도전-좀비특집’(116회). ‘28년 후’라는 제목으로 1억5000여만원을 들여 야심 차게 준비한 공포물이었다. 멤버들이 저만 살겠다고 나서는 통에 방향이 틀어지면서 방송 분량 28분에 불과한 용두사미가 됐다. 예상과 결과의 괴리를 절감했던 기획이었다. 시청자 설문 결과 ‘워스트(worst) 3’에 꼽힌 ‘여성의 날’ ‘인도’ ‘좀비’를 합쳐 이걸 만회하는 ‘인도 여자 좀비’ 특집을 200회 때 선보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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