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하위공무원 "힘있는 부서 가려면 잘비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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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공무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부서는 감사와 총무 부서다. 감사는 누구나 지적할 수 있는 힘이 있고, 총무는 표창과 근무 평가하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 가기 위해선 잘 비벼대는 '예스맨' 기질,윗사람 기분을 빨리 알아채는 '순발력', 상사가 쓴 판공비를 쉬쉬해야 하는 '무거운 입'이 있어야 한다."

중.하위직 공무원들이 일선에서 체험한 공직 현실을 적나라하게 토로한 『작은 새들의 비상』(한세M&B)이란 책이 곧 출간된다.

'정부미를 먹고 사는 촌놈들의 좋은 세상 만들기'란 부제를 단 이 책은 수십년간 누적된 공직 문화와 행정 관행의 모순을 가감없이 꼬집고 있다.

한 공무원은 하위직 위주로 단행된 구조조정에 대해 "일하는 사람은 한 사람인데 결재라인은 3~4명"이라며 "몸으로 뛰며 일하는 사람보다 결재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자신의 위상과 관련해 다른 공무원은 "공무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우리는 긴 세월 동안 침묵을 강요당했다"며 "비민주적인 관료주의 속에서 '공무원이 그러면 안된다'는 말 한마디에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탄했다.

어느 공무원 부인은 "눈이 내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라고 기뻐하는 나에게 남편은 갑자기 작업복을 주섬주섬 입고는 '못들어올테니 기다리지 말고 자라'며 나가더군요"라며 잦은 공무원 동원령을 꼬집었다.

수해 복구에 나섰던 공무원은 "물 퍼주러 간 공무원은 양수기를 갖고 죽어라 물을 퍼주는데 집주인은 뒷짐지고 지시하고… 도대체 공무원의 업무 영역은 어디까지인가"라고 푸념을 늘어 놓았다.

"고시 출신에 비해 인사상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이들 하위직 공무원은 "고시제를 개선하지 않고는 공무원 인사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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