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 칼럼] 정당 민주화 계기 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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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당총재직 사퇴로 민주당은 위기와 기회의 갈림길에 섰다.'DJ바라기'가 체질화된 민주당에서 DJ란 구심점의 상실은 당의 표류와 분열을 심화시킬 수 있다.

대통령의 지도와 지원을 잃은 민주당은 집권당이랄 수도, 집권당이 아니랄 수도 없는 어정쩡한 신세가 됐다. 더구나 국회에서도 소수당이라 거야(巨野)에 밀리고, 어느 여론조사를 봐도 재집권에 대한 비전마저 불투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당은 보스정치를 탈피해 정당민주화를 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치 폐해의 상당 부분은 공천권과 당론 결정권을 한손에 쥔 3김(金)식 보스 정치에 기인했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는 아무리 훌륭한 식견을 가진 사람도 보스 앞에선 한없이 작아져 버리고 마는 것이 그동안의 정당 풍토였다. 이러한 정당 풍토에서 스스로 보스가 물러난 민주당은 정당민주화의 최대 걸림돌이 사라진 셈이다.

*** 당원투표로 공천 결정을

정당 민주화의 핵심은 공직후보 결정과 당론 결정의 민주화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당들의 공직후보 결정과정은 대통령후보 지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황제 점지식 하향 공천이었다.

대통령후보 지명의 경우에도 특정지역 맹주 중심 정당에선 선출이 아닌 추대에 불과했다. 金대통령의 경우 1987년 이래 각기 이름이 다른 세 정당에서 세번 대통령후보로 나섰지만 기실 그 정당들은 모두 'DJ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창당된 DJ당이었다.

정당민주화를 위해선 당장 내년에 닥쳐오는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에 내놓을 후보 공천부터 민주화해야 한다. 우선 지방선거의 경우 기초자치단체장은 기초자치단체 의원의 경우처럼 정당 공천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선행됐으면 좋겠다. 주민들과 직접 부닥치는 시.군.구정에까지 정당정치적 고려가 끼어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정당공천이 가능한 광역지방자치 단체장과 의원, 국회의원, 대통령후보 공천은 실질적으로 당원 내지 대의원들의 투표로 결정하는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정당의 공천과정을 민주적으로 개혁하는 일은 정당 내부문제를 넘어 우리나라 정치 민주화의 핵심과제다.

정당의 상향식 후보 공천은 두가지 방식이 있다. 후보 출마 지역의 각급 당위원회에서 뽑는 방식과 해당 지역의 모든 당원이 참여하는 미국식 예비선거다. 미국식 예비선거에는 정당원만이 공천자 선출투표에 참가하는 폐쇄예선제와, 비정당원도 어느 한 정당만 선택해 투표할 수 있는 개방예선제가 있다.

각급 당위원회에서 대의원들이 공천후보를 뽑는 제도는 그 지역 정당 간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예비선거는 당원 내지 국민들의 의사가 광범하게 투영될 수 있다. 민주적 공천제도란 차원에선 예비선거제도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

그러나 당장 도입하는데 문제가 있다면 적어도 국민과 일반당원들의 의사가 광범하게 투영되도록 대의원 수를 대폭 늘리고, 대의원 결정과정도 민주적.상향식으로 해야 한다.

민주적 경선과정은 시끄럽고 잡음이 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파괴적 분열로만 가지 않는다면 오히려 역동적으로 보이고 홍보효과도 크다. 패자가 결과에 승복만 하면 페어플레이로 비쳐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큰 자산이 된다.

*** 자유 ·교차투표 확대해야

70년 당시 야당인 신민당의 대통령후보 지명대회는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집권세력엔 위기감을 안겨줬다. 그 지명대회의 승자였던 DJ와 결과에 승복, 승자의 선거를 도왔던 패자 YS는 훗날 모두 대권의 꿈을 이뤘다.

현재 거야에 밀리고 비전도 보이지 않는 민주당이 국민의 주목을 끌 수 있는 길은 민주정당으로의 환골탈태를 민주적 경선의 페어플레이로 보이는 것뿐이다.

당론 결정의 민주화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각급 기구에서 토론을 통해 상향식으로 당론을 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국회에서 헌법기관인 의원들을 졸병 줄 세우듯이 하는 지금의 풍토는 정치 침체와 무력감의 한 원인이다. 정치성이 적은 안건에 대해선 의원들의 자유투표.교차투표를 확대해 정당간 대립을 완화할 필요도 있다.

한 정당의 당내 민주화는 필연적으로 다른 당에도 영향을 미친다.金대통령의 총재직 사퇴가 민주당을 비롯해 우리나라 정당민주화의 선순환의 계기가 됐으면 싶다.

성병욱 <중앙일보 고문.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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