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햇볕정책 제도화에 주력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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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최근 잇따라 대북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했다. 金대통령은 지난 24일 청와대에서 7대 종단 지도자들을 만나 "남북 문제를 임기 내에 다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또 하루 전인 23일엔 울산에서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되 무리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金대통령의 이러한 발언들이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데 공론화가 부족했다는 그동안의 지적과 이른바 햇볕정책의 과속 시비에 대한 반성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환영한다.

그동안 야당을 중심으로 한 국내 일각에서 "햇볕정책의 이상은 좋지만 쏟아부은 노력에 비해 성과가 없었다"며 "햇볕정책 추진으로 우방과의 관계에 혼선이 일고 있다"는 비난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만약에 최근의 잇따른 발언들이 지금까지의 대북정책에 대한 포기선언적 의미라면 이에 대해선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교류.협력을 통한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통일에 대한 국민의 염원은 아직도 식지 않았으며 이산가족들의 재결합에 대한 의지와 열정도 여전히 뜨겁다.

때문에 金대통령의 발언이 최근의 정치 상황과 대북정책의 지지부진함에 대한 실망감으로 인해 지금까지 추진해온 대북 화해 정책에 대한 노력을 포기하는 쪽으로의 정책 선회를 상징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동안 쏟아부은 노력과 투자가 아깝고 화해.협력을 통한 남북간 긴장 완화는 변치 않는 대북정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은 공론화와 제도화가 미흡했다는 점이다. 또 이벤트성 깜짝쇼를 통해 국내 정치의 어떤 탈출구를 찾으려했다는 게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金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이 점을 중시하면서 경협과 군사 부문의 상설 위원회 가동을 통한 제도적.공론적 남북 협의기구를 상설화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대북정책이 특정 정권의 인기 위주의 반짝 정책에 그치지 않고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지속될 수 있는 화해.협력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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